- 결국 "고통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표 칼럼니스트]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과 맞닥뜨린다. 출산의 고통, 성장의 시련, 질병과 이별의 아픔까지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과연 고통이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고통 자체가 삶을 완성하는 필연적인 요소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동서양의 철학, 종교, 심리학을 넘나드는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는 고통을 "인식의 문제"로 보았다. 에픽테토스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즉, 고통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 해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불교 역시 "모든 고(苦)는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며, 욕망의 포기를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반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고통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라 주장했다. 자유롭게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곧 고통을 낳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 고통 없는 삶의 허상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진통제, 항우울제, 가상현실 등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덜어주지만, 정말로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니체는 "고통 없는 삶은 오히려 인간성을 퇴화시킨다"고 경고했다.
고통이 없으면 성장도, 공감도, 창의성도 사라진다. 마치 근육이 저항 없이는 발달하지 않듯, 영혼도 시련 없이는 단련될 수 없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이 무의미할 때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즉, 고통이 삶의 의미와 연결될 때,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사진: ㅇ창호 칼럼니스트
◇ 고통을 넘어서는 법,긍정의 철학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받아들이고 변환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후 《교향곡 9번》을 작곡했고, 헬렌 켈러는 "삶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킨 점이다.
동양의 《주역》에서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고통이 다하면 달콤함이 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현대인들이 명상, 예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고통과 공존하는 지혜
결국 "고통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사유하게 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느끼게 하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라틴어에 "Per aspera ad astra(고통을 통해 별들에게 이른다)"라는 격언이 있다.
어둠이 없으면 빛의 소중함을 모르듯, 고통이 없는 삶은 오히려 공허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지혜일 것이다.
"행복은 고통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이 칼럼은 철학적 논조로 고통과 행복의 관계를 다루었으며, 동서양의 사상과 현대적 관점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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