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남현설 시인의 신유물론적 시, '창'
창
남현설/ 시인, 수필가,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바람이 미끄러지듯 스며들고
햇살은 먼지들을
황금빛 춤으로 흔든다
어떤 빛은
보랏빛으로 속삭이고
어떤 빛은
붉게 설렘을 품는다
때때로
빛은 안으로 기어 들어와
마음을 스친다
또 때로는
밖을 향해 시선을 내밀어
세상을 들여다 본다
눈동자 속 풍경이
눈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 속
열림과 닫힘 사이
익숙함과 낯섦 사이
숨은 경계 위에서
안과 밖의
숨결을 잇는다
▶남현설
포항 출신, 2023년 에세이문예 시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2024년 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2025년 제1회 진리와표현문학상 수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원, 권대근문학상운영위원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 다스림부산 동인 녹조근정훈장 수훈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남현설의 <창>은 세계와 주체를 잇는 매개로서의 ‘창’을 재해석하며, 감각적 현상을 존재론적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시는 바람과 빛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포착하며 시작되는데, 이때의 빛은 단순히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그려진다. “보랏빛으로 속삭이고”, “붉게 설렘을 품는다”는 표현은 세계가 먼저 정서적 언어를 걸어오는 순간을 형상화하며, 외부 세계를 능동적 감응체로 제시한다. 이러한 설정은 창이 단지 안과 밖을 구획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감각의 통로이자 내면과 외부가 서로 전이를 일으키는 경계적 지대임을 드러낸다. 빛이 “안으로 기어 들어와 마음을 스친다”는 구절은 외부의 감각이 내면의 심리로 번져드는 흐름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시인은 주체의 감각 세계가 외부 환경의 조용한 침투와 흔들림 속에서 구성됨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열림과 닫힘’,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대비적 구조로 확대된다. 이는 창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인식과 정서가 지닌 양가성을 드러내는 철학적 장치이다. 창은 열림과 닫힘을 반복하는 구조적 존재지만, 시에서는 이 반복이 곧 주체의 내면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의 메타포로 읽힌다. 풍경이 눈동자 속에 스며드는 순간 창이 열리고, 감정의 흐름에 따라 다시 닫히는 장면은 인간의 인식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조정되는 움직임임을 보여준다. 결국 “안과 밖의 숨결을 잇는다”는 결구는 이 시가 지향하는 통찰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경계의 존재는 분리의 기능보다 연결의 기능을 더 강하게 띠며, 인간 또한 그러한 경계 위에서 세계와 자신의 내면을 호흡시키는 존재임을 조용하고 섬세한 신유물론적 어조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