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에 중국은 지난 40여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개혁개방 이후 8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인프라·산업·기술 혁신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 5G·고속철·신재생에너지·전자상거래·우주기술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오른 것도 사실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오늘날 국제정치·경제 담론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다. 특히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국가에서는, 중국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국가 전략에 심각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논쟁은 ‘중국은 통치적이다’ 또는 ‘중국은 발전했다’라는 양 극단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둘 중 하나만을 강조하면, 나머지 절반의 현실을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현대사는 통치와 발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공산당 통치체제는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고 언론과 표현의 영역을 국가가 강하게 통제한다.
특히 시진핑 체제 이후 사상·이념 분야에서의 엄격한 규제는 강화됐다. 소셜미디어 검열, 인권운동가와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반체제 인사 처벌은 국제사회로부터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이는 분명 통치의 실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지난 40여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개혁개방 이후 8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인프라·산업·기술 혁신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 5G·고속철·신재생에너지·전자상거래·우주기술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오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국제조 2025’와 ‘일대일로’ 정책은 중국을 세계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만들었다. 이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발전의 실체다.
중국의 통치와 발전은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고, 심지어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치적 안정과 강한 중앙집권 구조가 장기적 계획 경제를 가능하게 했고, 이는 인프라 확충과 산업정책의 일관성을 높였다.
반대로, 경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 집중은 정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였다.
문제는 외부에서 중국을 바라볼 때 ‘통치=부정적, 발전=긍정적’이라는 단순 구도로 해석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렇게 흑백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강조하며 압박을 가하지만, 동시에 중국 시장의 규모와 공급망 의존도를 무시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사드(THAAD) 배치 이후 경험한 경제 보복은 중국의 억압적 성격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적 협력 대상이라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내부에서도 통치와 발전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대도시 중산층은 경제적 기회와 사회안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정치적 자유를 중시하는 지식인이나 소수민족 지역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부정적으로 본다. 이 차이는 중국 사회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양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보는 것은 곧 전략적 실수를 의미한다.
특히 한국처럼 미·중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국가는, 이 양면성을 바탕으로 정책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한쪽 눈을 감고는 결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정책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분명히 지키되, 경제·안보·환경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기후변화, 북핵 문제, 역내 경제협력은 중국과의 대화 없이는 풀기 어렵다. 동시에, 정치·군사적 압박이나 불공정 무역 관행에는 원칙 있는 대응이 요구된다.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접근’이다. 중국의 통치를 강조하며 관계 단절을 주장하거나, 발전만 보고 무조건적 협력을 외치는 태도 모두 위험하다.
감정은 단기적 여론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 국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전략은 냉정해야 한다.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관점은 ‘역사적 맥락’이다. 중국의 중앙집권적 통치와 사회통제는 제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통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외세 침략과 내전, 분열을 반복한 역사 속에서 ‘강한 국가’와 ‘안정’은 중국인에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공산당 체제가 이를 계승·변용하며 발전의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통치와 발전의 동시성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정치적 통치는 사회 내부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경제 성장의 둔화는 발전 성과를 바탕으로 한 체제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 균형이 흔들릴 때, 중국 내부의 변화 가능성이 커진다.
외부 세계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하면서도, 당장의 현실에서 통치와 발전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현실을 관리하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단순하지 않다. 통치과 발전이 함께하는 나라를 이해하려면, 단편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학문적 분석이 아니라, 현실적 필요다. 특히 한국에 있어 중국은 피할 수 없는 이웃이자, 전략적으로 맞서야 하면서도 협력해야 하는 상대로 남을 것이다.
중국을 비판할 때도, 중국을 활용할 때도, 우리는 반드시 그 양면성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 통치만 보고 발전을 무시하는 것은 편견이고, 발전만 보고 통치를 무시하는 것은 순진함이다.
균형 잡힌 시각만이 올바른 정책과 외교를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한국이 중국을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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