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부 작가는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만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
수필 11집을 마무리하고 출판을 의뢰했다. 지난 2년간 수생반에서 글공부를 하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한 달쯤 지나면 책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멋진 표지 디자인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도 지난 10집보다 훨씬 밝고 환한 옷을 입고 나올 것만 같다.
책 한 권을 내려면 최소 40편의 원고가 필요하기에 미리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모았다. 30편 정도는 무난히 썼지만, 마지막 10편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봄이 되자 원고를 정리해 출판을 준비했으나 분량이 조금 부족한 듯해 다섯 편을 더 써 넣었다. 이렇게 45편을 채우고, 독자 후기란에는 독후감을 덧붙여 책 한 권 분량을 완성했다. 출력해보니 A4용지 159쪽이 나왔다. 두툼한 원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펼쳐보며 페이지를 맞춰보았다. 빳빳하고 하얀 종이 뭉치에서 은근한 성취감이 피어올랐다.
무엇보다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창작의 기쁨이 컸다. 잘 썼든 못 썼든,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겼다. 특히나 수술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며 4~5개월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다는 자신감이 더욱 값졌다. 원고를 보내기 전까지 퇴고를 거듭했지만, 오탈자는 여전히 발견되었고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쳤다.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바꾸었다. 그럼에도 원고를 넘기고 나니 후련했다.
원고 정리의 마지막 순간, 문득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쓰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년퇴직 후 영어를 배워보고자 영어교육대학원에 진학했던 일이다. 주변은 대부분 영문과 출신의 중고등학교 영어교사들이었고, 평균 연령도 40세 이하였던 반면 나는 60대의 유일한 노학생이었다. 나이가 많고 비전공자라 걱정이 많았지만, 몇 배 더 노력하겠다는 각오로 강의에 임했다. 처음엔 강의 내용을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5학기 과정 중 마지막 학기는 수업 없이 논문만 제출하면 되었다.
첫 시험 때가 특히 기억난다. 긴장 속에 교수님이 칠판에 적은 두 문제는 다행히 익숙한 내용이었다. 자신 있게 답안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컨닝하지 마세요!”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어 선생님들도 컨닝을 하나. 평생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깜짝 놀랐다.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기에 여유 있게 제출했는데, 아뿔사! 문제 번호를 바꿔 쓰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미 제출한 시험지는 돌이킬 수 없었다. ‘빵점이구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전철에서 한 중년 여성을 마주쳤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곧바로 그때의 영문학 교수님임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교수님은 내 얼굴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시험문제를 바꿔 쓰셨지만 A학점을 드렸지요.” 순간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때 따로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한 번은 대학원 성적증명서를 떼러 간 일이 있었다. 전 학기의 성적을 처음으로 확인해보니 깜짝 놀랐다. 학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이번처럼 공부했더라면 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학위 취득의 진짜 고비는 영어가 아니라 논문이었다. 수필 공부를 한 지금 같았으면 자신 있게 쓸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글쓰기에 대한 기초조차 없어 두려움이 앞섰다.
논문 주제는 ‘워즈워스와 노자의 자연주의 사상 비교’였다. 시를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워즈워스’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노자 역시 어려웠다. 둘 다 낯선 분야라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어도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한 학기 절반이 지나도록 단 한 장도 쓰지 못했다. 결국 기존 논문을 인용하고 표절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짜깁기하여 겨우 완성했지만,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의 글을 흉내 내는 데 치중한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다. 이후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남의 글을 흉내 내지 않겠다고.
요즘 장관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문제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나 역시 청문회 대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수필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자기 고백이기 때문에 인용할 것도, 흉내 낼 것도 없다. 그 점이 참 좋다. 수필은 내 삶을, 내 기억을, 내 시선을 담아내는 문학이다. 평범한 일상이나 지난 추억에 의미의 옷을 입혀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육안이 아닌 심안, 곧 내면의 눈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나’라는 점에서 수필은 철저히 나만의 문학이다.
“니체의 글이 훌륭한 이유는 니체적인 글을 썼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본 적 있다. 나 역시 고수부다운 글을 쓰고 싶다. 그 글이 서정성이 있든 문학성이 풍부하든 남의 스타일을 따라가기보다 나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글을 쓰고 싶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나’이듯, 내 수필도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수필’이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수필을 써 나갈 것이다.
▼고수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 ․ 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수상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필집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울 건너는 빛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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