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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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청수 수필가는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서울시 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및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훈,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한 바 있다

키오스크

 

한청수/ 수필가

 

지난주일 교회에서 오래전 선교 활동을 같이했던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점심을 하고 교회 가까운 커피집으로 음료를 마시기 위해 들어갔다. 카페 카운트 앞에 키오스크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유리 작은 화면 속 낯선 버튼을 누르다가 머뭇거리던 늙은 손가락이 길을 잃었다. 몇 번 허둥대다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직접 주문은 안 되나요?” 무인 주문만 가능하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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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수/ 수필가

친구와 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재시도를 해본다. 떨리는 글자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아이콘은 낯선 별자리처럼 빛난다. 주문은 멀리 있고 뒤에서 쏟아지는 한숨은 손바닥에 땀방울이 맺힌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초조한 표정이 긴 줄을 만든다. “아래 파란 메뉴 버튼 누르세요앙칼진 직원의 차가운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내 손가락은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예쁜 언니가 다가와 화면을 함께 바라보며 묻는다. “매장에서 드시려면 아래 버튼을 눌러야 해요, 어떤 음료를 좋아하세요?” 겨우 주문을 끝냈지만 무인 주문기 앞 세상의 흐름 속에서 밀려난 기분 때문에 오늘 음료는 세상 맛없는 음료가 될 것 같다. 이제는 기계가 말을 대신하고, 세상은 정을 지운 채 속도만을 재촉한다. 디지털은 편리함과 효율을 앞세운다. 작은 글씨, 복잡한 화면, 되돌릴 줄 모르는 선택 앞에서 도움을 청하자니 부끄럽다. 헤매자니 미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무너진다.

 

한때는 시장의 흥정 속에서 웃음으로 밥을 얻던 날들이 있었다. 야시장 상인들의 짐을 날라주고땀을 훔치며 해장을 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주모의 거칠지만 정겨운 손길에서 건네주던 국밥 한 그릇 꽁꽁 언 속을 풀어주려고 몇 번이고 토렴하여 그릇이 넘치게 퍼주던 국밥 속에는 단순히 곡식과 고기, 파와 소금만이 담긴 것이 아니었다. 온종일 지친 몸을 위로하는 새벽 추위를 잊게 하는 세상의 정이 녹아 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머금으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었다.

 

차가운 디지털 기계 앞에 따뜻한 아날로그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것은 단지 한 잔의 음료를 잃는 슬픔이 아니다.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젊은 손 하나가 다가와 화면을 눌러주고 웃어 준다면 그 순간 세상은 다시 조금은 따뜻해지겠지. 점점 똑똑해지는 AI시대 키오스크 기계옆에 문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얼음처럼 굳어버린 사람을 위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로버트 하나 세워 주는 사업장은 없을까. 기술이 진정 모두를 위한다면 얼마나 따뜻하고 인간적인지를 생각하고 만들면 좋겠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개인과 기업들을 보았다. 천팔백 구십년대 코닥은 필름의 대명사였다. 미국 필름 시장의 구십퍼센트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코닥을 끌어내린 건 다름 아닌 코닥 자신이었다. 세계 최초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기존 필름 사업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하여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새로운 판을 짤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계산대 대신 눈앞에 서 있는 차갑고 반짝이는 기계를 더는 두려워해선 안 될 것 같다. 손끝으로 화면을 눌러야만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뒤에 선 사람들의 기침 소리 발끝을 구르는 소리가 밀물처럼 밀려와도 세상의 발걸음에 내 걸음을 포개 넣어야 한다. 손끝은 떨리고 화면 위를 떠돌다 멈춰 서지만 주문하기라는 단순한 동작이 인생을 살아온 긴 세월보다도 더 가파른 산은 아니겠지. 세상은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고 한다. 기계는 인내하지 않고 다정하지도 않다. 늙은 세대를 기다려주지 않고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만 달려간다. 익숙함에 머무르는 그것은 당장은 편안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면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결국 생존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본다.

 

자신이 점점 세상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서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모없어지고 있다는 비애 이것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앞에 둔 불편이 아니다, 존재가 점점 지워지는 한순간 옆에 있던 젊은이가 다가와 화면을 대신 눌러주고, 웃으며 말한다. “할머니, 이거 드시고 싶으셨죠?” 세상이 차갑더라도 사람을 배려하는 손길과 마음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음을 느낀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저앉을 듯 쩔쩔매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내일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늘 앞서 달리고 실행은 어렵지만 마음만은 함께 걸을 수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그 차가운 화면보다 따뜻하게 다가올 때 늙은 세대의 비애는 조금은 덜어지고 다시 세상 속에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니체의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 나오는 말이다. 진짜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변화 앞에서 멈춰서 버리는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한청수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게간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서울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테헤란 한국학교 교사 근무, 문교부 장관 표창, 옥조근정훈장 수상, 한국교원 교육논문 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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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한청수의 '키오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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