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0(수)
  • 전체메뉴보기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실천이다.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매주 한 명과 통화하기, 월 1회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기, 분기별 1회 봉사활동 같은 ‘관계 루틴’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는 운동 계획을 세우듯 구체적이어야 하며, 관계 역시 근육처럼 꾸준히 써야 단단해진다.

[대한기자신문] “요즘 연락 오는 사람 있어요?”

퇴직하고 나니, 다 끊긴 것 같네요. 번호부는 두툼한데, 정작 만날 사람은 없어요.”

짧은 대화 속에 퇴직 후 많은 이들이 마주하는 고독이 담겨 있다. 직함과 조직이 사라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연락선도 함께 끊긴다. 명함첩에 가득한 인맥은 생각보다 빨리 죽은 번호부가 되고 만다. 그래서 퇴직 이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이다.

 

김한준 박사.jpg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퇴직은 직장에서 물러나는 사건이지만, 은퇴는 관계의 무대에서 물러나는 선택이다. 이 차이를 인식할 때, 관계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재설계의 과업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바로 관계 리셋이다. 낡은 연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다시 짜는 작업이다. 흔히 사람들은 재무 자산이나 건강을 퇴직 준비의 핵심으로 꼽지만, 실제 삶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요소는 관계 자산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관계는 곧 자본이며, 고립은 또 다른 빈곤이다.

 

퇴직 이후 인간관계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조직이 사라지면 관계의 선택권은 온전히 개인에게 넘어온다. 생계와 출세라는 목표가 옅어지면서 관계의 질적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건강과 심리적 안정이 관계 지속의 토대를 좌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퇴직 이후에도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첫째, 관계 리셋 다이어리를 만드는 일이다. 단순한 인맥 관리가 아니라 앞으로 누구와 어떤 주제로 교류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작업이다. 예컨대 주말마다 산책할 건강 파트너, 매달 책을 읽을 학습 모임, 삶의 경험을 나눌 멘토-멘티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관계를 카테고리별로 설계하면 막연한 외로움이 구체적 만남의 계획으로 전환된다.

 

둘째, 연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다. 금융 포트폴리오처럼 관계도 위험 분산이 필요하다. 직장 중심 네트워크에만 의존하면 퇴직과 동시에 모든 자산을 잃는다. 지역 커뮤니티, 동호회, 온라인 플랫폼, 사회공헌 활동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관계를 다변화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은 이제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봉사·학습·창업 등 새로운 연결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 번째는네트워크 리빌딩이다. 과거 인연을 단순히 회상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새로운 프로젝트와 공동의 목표를 통해 다시 묶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 셰어링 제도가 활발하다. 예컨대 일본의 실버인재센터는 지역 기반의 공동 활동을 통해 퇴직자들의 기술과 경험을 사회와 재연결한다. 한국 역시 이런 제도를 단순히 벤치마킹에 그칠 것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을 결합해 세대 간 교류와 협업을 촉진하는 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실천이다.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매주 한 명과 통화하기, 1회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기, 분기별 1회 봉사활동 같은 관계 루틴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는 운동 계획을 세우듯 구체적이어야 하며, 관계 역시 근육처럼 꾸준히 써야 단단해진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더해져야 한다. 현재 평생교육원이나 복지관 중심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공급자 관점이 강하다. 중장년 스스로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기획 지원금을 확대하고, 기업은 퇴직 예정자를 위한 관계 리셋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 전체의 관계 인프라를 강화하는 길이다.

 

퇴직 이후의 행복한 인간관계는 결코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새롭게 설계하고, 생활의 습관처럼 실행하며, 더 나아가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관계는 더 이상 명함첩 속의 숫자가 아니라, 인생 후반부를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대사처럼,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위로받는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관계 리셋 다이어리에는 누구의 이름이 가장 먼저 적혀 있는가. 그 이름이 곧 당신의 내일을 지켜줄 또 하나의 희망이다.

 

 /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기사제보charlykim@hanmail.net)

1000050016.png

김한준 논설위원장 기자 kcunews@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대한기자신문=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10)] 퇴직 후, 관계를 리셋하다 - 인간관계는 소멸이 아니라 재설계의 과제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