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도 역시 이 거대한 변화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설 수 있다. 관세와 무역의 갈등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 재편의 신호탄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능동적 선택을 할 수 있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미국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와 고율 관세 정책은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 교역 질서를 흔드는 충격파는 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진동시키며, 신흥 경제 대국들로 하여금 새로운 다자주의를 모색하게 한다. 그 중심에는 중국, 인도, 러시아라는 세 나라가 있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전략적 연합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공세가 사실상 동맹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공동의 대응 체계 없이는 각각의 경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자리한다. 각국의 경제 구조와 외교 노선은 서로 다르지만, ‘미국 일극 체제’가 흔들림 없는 관세 장벽으로 작동하는 순간, 협력은 필연이 됐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전역을 묶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를 기반으로 IT와 제조업을 결합한 새로운 성장 축을 구축 중이며,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매개로 동·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공급망 재편을 모색한다. 이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릴 때, 미국의 단독 제재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관세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 정치에서 ‘힘의 언어’이자 외교적 압박 수단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누적된다.
자동차, 반도체, 에너지, 식량 등 전략 산업에서 공급망이 재조정되는 순간, 미국이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제권이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인도·러시아의 연합은 바로 그 대안적 질서의 전조일 수 있다.
물론 세 나라의 협력이 단순하거나 매끄럽지만은 않다. 역사적으로 국경 문제와 전략적 이해가 충돌해 왔고, 지금도 완벽한 신뢰 체계가 구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공통의 위협’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질적인 세력이 손을 잡는 것은 국제 정치에서 반복된 패턴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격랑 속에서도 ‘핵 확산 방지’라는 공통 과제를 놓고 협력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해의 접점은 만들어진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자국 산업 보호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동맹의 이탈과 경쟁국 간 연대를 촉진할 위험이 있다. 이미 브릭스(BRICS)는 확대와 제도화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과 견줄 만한 영향력을 지향하고 있으며, 석유 결제 시스템에서도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무역 전쟁의 차원을 넘어, 금융과 통화 질서의 다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할 것인가.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깊숙이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인도, 러시아와의 교역 없이는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은 냉정한 계산을 요구한다. 특정 편향에 갇히지 않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미국의 관세 장벽이 높아질수록,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나라들의 움직임이 더욱 빛난다. 중국·인도·러시아의 연합이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단순히 반미 연대가 아니라, 다자주의를 위한 다극화된 세계 질서로 향하는 불가피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역시 이 거대한 변화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설 수 있다. 관세와 무역의 갈등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 재편의 신호탄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능동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다자주의의 연합과 균형의 시대, 우리 앞의 길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길을 외면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