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여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했다. 맹자 또한 “중용은 도의 근본”이라 강조하며,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로서 중용을 설파했다.
{대한기자신문 김채원기자]오늘날 한국 사회는 양극단으로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은 날마다 극단적 언어를 주고받고, 언론은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며, 시민들의 일상 속 대화조차 ‘편 가르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쪽은 무조건적인 긍정, 다른 한쪽은 철저한 부정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며, 그 사이의 균형 잡힌 목소리는 쉽게 묻혀버린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시대정신의 지혜가 바로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을 택하라는 소극적 처방이 아니다. 그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과 욕망을 절제하고, 상황의 맥락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행동의 중심’을 찾으라는 철학적 실천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여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했다. 맹자 또한 “중용은 도의 근본”이라 강조하며,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로서 중용을 설파했다.
결코 현실 도피적이거나 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어려운 덕목이자 인간다운 삶의 정수였다.
정치의 영역에서 중용은 더욱 절실하다. 정치란 본디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이 교차하는 장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늘 격렬한 충돌로만 귀결되는 것은 중용의 미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립은 필요하지만, 그 대립이 타협과 균형을 향한 창조적 긴장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는 피로감만 더 할 뿐이다.
게다가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되, 상대의 논리와 존재 또 인정할 줄 아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중용은 바로 이런 ‘통합의 미덕’을 가능케 한다.
경제와 사회 영역도 다르지 않다. 한때 우리는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해야 한다는 극단적 신념을 가졌다.
오늘날의 현실은 그 반작용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키웠다. 반대로 성장을 멈추고 분배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조화시켜야 한다. 중용은 이 균형점을 찾아내는 철학적 나침반이다.
더 나아가 중용은 개인의 삶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현대인은 성취와 성공을 지나치게 좇다가 소진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체념하고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극단의 어느 한쪽에 있지 않다. 중용의 태도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절제, 타인을 배려하되 자신을 잃지 않는 균형에서 드러난다.
이는 자기 삶의 중심을 지켜내는 철학적 태도이며, 동시에 대동 연대의 기초다.
유교 전통에서 중용은 군자의 덕목이자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옛 성현의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에도 중용은 여전히 살아 있는 실천적 지혜다. 기후위기와 국제 갈등, 국제 사회의 양극화와 가치 충돌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더 큰 균열을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중용은 균형과 절제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라는 시대적 요청으로 다시 다가온다.
중용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절제가 필요하다.
그 길만이 극단의 파도를 건너 사회적 화합과 개인의 평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다시금 중용의 가치를 생활 속에 심어갈 때,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터널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