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지 마세요.”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Trigger, 2025) 마지막 회, 총구를 겨눈 문백(김영광 분) 앞에서 형사 이도(김남길 분)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오히려 팔을 벌려, 곁에 있던 아이를 단단히 품에 안는다. 그 순간 총성은 울리지 않았고, 군중은 숨을 고르듯 멈춰 섰다. 짧지만 강렬한 이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총을 쏘는 선택과 품는 선택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전자는 순간의 승리를 주지만 후자는 관계와 구조의 회복을 향하며, 무력은 상대를 멈추게 하지만 연결은 상대를 변하게 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폭력은 권력을 파괴한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은 사람과 사람을 함께 묶는 힘이며, 그 힘은 오직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트리거〉의 대부분은 방아쇠를 당기는 이야기였다.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고, 제도에 대한 불신이 폭력으로 전이되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결말은 달랐다. ‘총 없는 해결’은 드라마 속에서도 드문 선택이며, 이도는 법도 무력도 아닌 ‘관계의 복원’이라는 해법을 택했고, 그 순간 군중은 총을 내려놓았다. 공포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화면은 시청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현실에서도 폭력보다 연결이 강력했던 사례가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 시절, 피의 보복이 일상처럼 이어지던 시기에 일부 지역사회는 ‘공동 아이 돌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경험은 상대 진영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서서히 희석시켰고, 아이를 맡기고 돌보는 과정에서 생긴 짧은 일상 대화조차 정치로는 풀리지 않던 불신을 누그러뜨렸다. 르완다 집단학살 이후에는 ‘가차차’라는 공동체 재판이 도입됐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한 이 제도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체가 폭력의 연쇄를 스스로 끊어내는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두 사례 모두, 법이나 무력보다 ‘관계의 회복’이 갈등 해소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도 ‘포옹의 정치학’은 절실하다. 분열과 대립은 매일 뉴스와 SNS를 통해 증폭되며, 정치·경제·문화 갈등이 생활 속 깊숙이 스며든다. 직장의 세대 갈등, 지역 예산 다툼, 학교 집단 따돌림, 인터넷 혐오 댓글까지—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무력적 대응은 순간의 쾌감을 줄지 몰라도, 갈등의 뿌리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연결을 선택하는 사회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갈등조정 2.0 플랫폼 구축이다. 단순한 오프라인 조정센터를 넘어 법원·지자체·민간이 참여하는 하이브리드형 플랫폼을 만들고, AI 기반 감정 분석과 화상 중재 시스템을 통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초기 개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해외 ‘e-조정 플랫폼’처럼, 당사자가 직접 해결안을 작성·제안하는 구조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의무 공감·대화 시뮬레이션 제도다. 학교와 직장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당사자 전원이 가상 시뮬레이션 훈련을 받도록 법제화하고, 이는 단순 연수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모델링한 체험형 훈련이어야 한다. 영국 경찰이 이를 통해 협상 성공률을 높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셋째, 관계 회복형 형사정책+경제 인센티브 결합이다. 피해 회복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수한 가해자에게 형량 감경과 사회봉사 수당 지급을 병행하고, 반대로 불참 시에는 가중 처벌을 적용한다. 피해자가 동의할 경우 ‘회복 합의금’ 일부를 공동체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구조를 설계해, 사건을 사회 자본 축적의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
〈트리거〉에서 이도의 선택은 개인의 윤리였지만, 현실에서는 제도·기술·문화가 함께 작동하는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 연결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 가장 어렵지만, 그 순간이 바로 미래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방아쇠를 당기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팔을 벌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트리거〉의 결말은 허구지만, 그 메시지는 현실에 묻는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갈등의 순간,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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