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중국은 지금 역사적 서사와 군사력, 외교적 연대를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시진핑 주석의 국제 리더십을 재정립하려는 거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9•3전승절은 그러한 전략이 표출된 가장 상징적인 무대였다. 단순히 과거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장치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승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중국은 역사적 서사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항일 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기억을 자신들의 국제적 정당성으로 다시 세우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임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던 약소국이 아니라, 정의의 전쟁을 통해 인류사적 기여를 한 국가임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둘째, 군사력 과시는 이번 전승절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첨단 무기 체계와 군사 퍼레이드는 단순한 무력 시위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메시지였다.
그것은 ‘중국이 더 이상 방어적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질서의 균형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역량을 갖추었다’는 신호였다.
이러한 군사력의 공개적 퍼레이드는 주변국과 미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체제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다.
셋째, 외교 연대의 무대로서 전승절은 국제정치적 의미가 크다. 행사에는 다양한 26국가 대표단이 초청되었고, 이는 중국이 다자주의적 연대 중심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을 아우르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구상을 전승절 무대를 통해 드러낸 셈이다.
이는 기존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에 균열을 내고, ‘중국식 현대화’를 대안적 모델로 제시하려는 시진핑식 외교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번 전승절은 시진핑 주석의 국제 리더십 강화 전략의 시각적 정점이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중국의 위상과 국민적 결속을 강화하고, 국제적으로는 새로운 세력 균형 속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이 단순한 ‘부상하는 강대국(rising power)’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는 ‘규범적 강대국(normative power)’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에는 기회와 도전이 공존한다. 기회의 측면에서, 중국은 광범위한 역사적 연대를 재구성함으로써 개발도상국 다수와의 연대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결합해 종합적 강대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역사적 서사의 재구성은 주변국에게는 불편한 기억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은 전승절 담론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민감한 외교적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군사력 과시는 이웃 국가들로 하여금 안보 불안을 증폭시키고, 미·중 전략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외교적 연대 역시 단기간에는 화려하게 보일 수 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경우 쉽게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치적으로 볼 때, 중국의 이번 전략은 ‘전통적 강대국 정치와 새로운 국제질서 구상’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서사라는 소프트파워,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 외교 연대라는 네트워크 파워를 동시에 구사하는 방식은, 냉전 이후 등장한 다극체제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시진핑 주석은 이를 통해 ‘중국몽(中國夢)’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
향후 관건은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수용성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권력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는 리더십이 확보되지 않는다.
역사적 정당성, 군사적 억지력, 외교적 연대를 종합적으로 결합한 중국의 전략이 실제로 국제질서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전승절은 일회적 과시로만 남을 것이고, 오히려 주변국과의 긴장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승절은 중국의 국제 리더십 구상을 보여준 위대한 사건이라 평가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은 중국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또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강대국의 리더십은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와 책임, 그리고 다자외교에 관한 포용이 결합될 때 비로소 정당한 집정력이 성립한다.
중국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전승절을 통해 보여준 힘과 서사의 결합은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국제질서의 안정과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향후 중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국제리더십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미래와 국제 정치의 흐름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