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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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운명은 분리될 수 없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인류운명공동체’는 이러한 공속성(共屬性)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며, 개별자의 생존을 넘어 ‘보편적 공존’의 도덕적 무게를 모색하는 시대의 요청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한 인간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교직(交織)된 거대한 *태피스트리(Tapestry)와 같다. 나는 종종 나의 실존적 좌표를 되짚어보며, 이 거대한 직물 위 나의 위치가 하나의 행운으로 귀결됨을 느낀다.

 

이 행운은 물질적 풍요나 세속적 성공이 아닌, ‘라는 존재가 한국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인류운명공동체라는 화두를 온몸으로 사유하고 실천할 기회를 얻었다는 깊은 존재론적 자각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 홀로 설 수 없으며,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로 정의된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기후변화, 팬데믹19, 이념 갈등과 같은 거대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이 자명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운다.

 

, 우리의 운명은 분리될 수 없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인류운명공동체는 이러한 공속성(共屬性)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며, 개별자의 생존을 넘어 보편적 공존의 도덕적 무게를 모색하는 시대의 요청이다.

 

필자의 삶이, 이 요청에 응답하는 과정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행운의 본질이다.

 

내가 발 딛고 선 한국(우리나라, 전주리씨)이라는 땅은 이 철학적 사유를 위한 더없이 깊고 풍부한 텍스트를 제공한다.

 

대륙과 해양의 경계에서 수천 년간 상대방과의 마주침을 숙명처럼 겪어온 질곡의 역사, 갈등과 교류가 남긴 무수한 상흔과 자산. 이 땅은 경계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공간이다.

 

경계는 단절의 선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만남과 사유가 이루어지는 역동적 장()이다. 나는 이 역사적, 지정학적 토양 위에서 상대방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상호주체적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었다.

 

이는 이념적 선택이기 이전에, 나의 존재 조건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었다.

 

나의 여정은 상대방과의 조우(遭遇)’로 점철되어 있다. 문화와 예술, 학문과 정책의 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거대한 창이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편협함을 깨닫고, 나의 언어 너머에 있는 진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목소리 속에서도 우리는 평화’, ‘존엄’, ‘희망과 같은 시원(始原)적 가치 앞에서 깊이 공명했다.

 

바로 이 공명의 순간들이야말로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거대 담론이 추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실체임을 증명하는 빛나는 편린(片鱗)들이었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고 거칠었다. 개별 국가의 이익,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파도는 보편적 연대의 신념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길항(拮抗) 관계 속에서 나의 신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사람은 극복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불완전함을 비추고 함께 더 높은 차원의 길을 모색해야 할 파트너라는 사실이다.

 

차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들이 서로를 비추며 더 풍성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길. 이것이야말로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이 인류의 보편적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지혜라고 나는 믿는다.

 

결국 나의 삶을 행운이라 명명하는 것은, 나의 미미한 발걸음이 인류 시대정신과 인류의 보편적 열망과 어긋나 있지 않다는 깊은 안도감과 확신 때문이다.

 

나는 이 땅에서, 이 시대 위에서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꺼지지 않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무수한 빛의 행렬 속,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히고 있다.

 

나의 여정은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 그 자체다. 향후 나는 관계의 그물 속에서 길을 묻고, 또 다른 사람과의 공명을 통해 나의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내가 기꺼이 감당하고 누리는 가장 큰 행운이다.

 

이창호 마오 모자.jpg
사진: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색실로 풍경 따위를 짠 주단(綢緞). 벽걸이나 가리개 따위의 실내 장식품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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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원의 빛, 관계의 그물 속에서 나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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