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용 수필가는 전남 완도 출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수필 등단, 월간 문학세계 운영 홍보위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동작문인협회 운영이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주) 삼성주얼리 대표
고향일기
최병용/ 수필가
남해안의 물결이 훈풍에 은사를 이룬 섬 보길도는 땅끝이라 불리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 시간가량을 가야 도착하는 최남단에 있는 섬이다. 섬의 총면적 32.98km 중 임야가 28.10km를 차지하고 있는 산수가 수려한 완도군 보길도 이 섬의 동쪽 끝에 있는 80여 가구에 인구 250명인 작은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내가 태어나 이웃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목포 중학교에 입학 후 목포에서 살다가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별세로 광주에서의 고학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고향에서 가족을 돌보아 오던 형님의 입대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여기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스물아홉 살 되던 해 봄 서울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목포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는데 여객선을 7시간을 타고 가야 했고 돛단 조각배와 노 젓는 배가 주 교통수단이었으며 삶의 무기였던 고향이었다. 그런데 겨우 반세기 만에 지금은 해저 케이블로 한전이 들어와 있다. 또한 옛날엔 육지를 나가려면 하루 한편뿐인 여객선을 타고 아침 일찍 나서야 했는데 지금은 한 시간이 멀다고 해남과 완도읍에서 차를 싣고 여객선이 숨 가쁘게 드나들고 있다. 또한 각 읍면 대부분이 연륙교로 이어지면서 육지화되어가고 있고 쭉 뻗은 아스팔트 길에는 쉴 새 없이 차들이 달리고 있다. 완도군은 3개 읍 9개 면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동쪽 끝은 고흥군과 맞닿아있고 서쪽 끝은 진도와 가까운 곳에까지 이어져 있다. 지금은 각 읍면 대부분이 연륙교로 이어지면서 육지화되어가고 있다
물론 외떨어진 고도의 섬 청산도도 있고 완도군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노화읍, 소안면, 보길면은 일부는 연륙교로 이어져 있고 3개 읍면을 잇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육지인 해남과 연결된다는 건 현재로선 요원한 일로 보인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현실이 당시로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이루어져 있는 걸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을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도읍에선 제주까지 세 시간 걸리는 여객선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완도읍에서 아침 먹고 제주에 가서 점심 먹고 돌아올 수도 있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있다. 해남 땅끝과 완도읍에서는 여객선이 하루에도 수 차례씩 차량과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여행사에서는 관광코스로 기획 상품을 만들어 보길도를 여행코스에 포함시켜놓기도 하였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귀양 생활을 마친 후에도 수려한 산수에 반해 다시 이곳을 찾아와 여생을 보내며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남긴 곳이다. 정적으로 서인의 거두였던 우암 송시열이 당쟁으로 인하여 제주도 유배길에 바닷가 절벽에 한시를 남긴 완도군 문화유산인 글 씐 바위도 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예송리 상록수림과 갯돌밭 중리, 통리에 길게 펼쳐진 은모래 해수욕장 보옥리 뾰족 산과 공룡 알 해변 등 섬 전체가 관광 단지가 아닌 곳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천혜의 보물섬을 고향으로 두고 있건만 생활에 쫓기고 15년이라는 오랜 중국 생활로 고향을 제대로 다녀 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매번 꾸는 꿈속에서는 항상 찾아가서 뛰어노는 곳이 고향이다. 은어의 회귀를 보고 “首丘初心” 이라 할 수 있고, 나뭇잎이 땅에 떨어짐을 “落葉歸根” 이라 하여 동식물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보고 싶고, 그곳에 살고 싶은 향수야말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황혼이 되어버린 지금도 어릴 때 소년 시절로 돌아가서 뛰어노는 꿈을 꾸게 하는 곳, 그곳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항상 꿈속에서도 고향일기를 쓰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