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인생 후반전
김
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나중에 전문학원이나 특별지도를 통한 과외 길을 알게 되면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다. 인생은 외길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렇게 철이 늦게 들었는가를 후회한 적도 있다. 이 길을 10년 전에라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풍요로운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겠는가.

우리 부부는 일생동안 교수직에 있으면서 정작 자녀교육에는 남들처럼 극성부리지 못했다. 자녀 셋을 키우면서 학원에 보내거나 가정교사를 두어 특별하게 지도한 적이 없었다. 중 고등학교 과정에서 학교 정상수업을 최고의 가치로 믿고 집에서는 자녀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모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다행히 첫째 딸은 E대 둘째 딸과 셋째인 아들은 K대에 진학하여 대학과정을 마쳤다. 둘째 딸은 과외수업의 아쉬움을 노골적으로 들어낸 적이 있다. ‘과외 보내주지’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마치 S대에 합격한 것 같은 뉘앙스로 들렸다. 그때 나는 너무 바빠서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고지식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대학은 고등학교에서 한때의 실수로 뒤처진 학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기회를 보장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의 예를 보면 우리와 달리 대학에서 편입학이 수월하다. 대학 1학년 교양과정 이수 성적이 뛰어나면 좋은 대학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나는 수도 없이 관찰했다. 대학은 전공별로 학과 정원이 없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편 철저한 시장원리가 작용한 결과 취약학과 통폐합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감격스럽다. 학문발전을 위해서는 옳은 길이다. 우리나라는 학과 정원제가 있어서 결원이 있을 경우만 편입학이 허용되고, 학과 통폐합이나 해체는 불가능하여 학문발전이 지체된다. 너무나 안타깝다.
인생이 외길이라 생각해온 나는 65세 정년퇴임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대학에서 3년과 대학원에서 처음 2년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18시간씩 공부하는 데 투입했다.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중에 미국유학 길을 발견할 수 있었고, 경제학 석사학위를 추가로 받게 되어 박사학위과정이 수월해 짐을 몸소 겪었다. 교수가 되어 열정적으로 강의했으며, 어느 학기에는 일주일에 40시간 대학강의를 한 적이 있다. 기적 같은 일이다. 50세의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골프는 등산과 더불어 취미생활의 핵심이 되어 생활의 일부로 승화한 결과 신체적으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16년, 대학원 5년 등 21년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30세에 교수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 후 35년간을 교수직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정년퇴임 후의 삶을 인생 후반전이라 생각한다. 전반기를 끝내면서 두 가지에 역점을 두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나는 연구소를 만들거나 초청 강의 등 교수직과 연관된 활동을 하면서 정부나 관련 기관을 드나드는 행위는 품위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문중 일에 참여하는 길을 택했다. 의성김씨 천상문화보존회장 8년 의성김씨 수도권 종친회장 2년 등을 맡으면서 숭조정신과 문풍을 이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안동 영가회 회장과 강릉중앙고 장학회 이사장을 맡은 적이 있다.
다른 하나는 에세이 진수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40년간 아카데믹 에세이에 훈련된 나로서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글의 특성을 벗어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사고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가. 내 마음대로 참고문헌이 없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글이 아니겠는가. 수필창작반에 등록하게 된 배경은 단순하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라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작가들에게 문의해보았다. 대답은 학자가 글을 쓰면 딱딱해서 남들이 읽기가 어렵고 심지어 자식들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문학창작반에 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주어서 권대근 교수가 지도하는 수필창작반에 참여하게 되었다.
에세이는 논리적이거나 객관성을 요구하는 글이 아니다. 스타일도 없다. 내 생각 내 소신대로 써 내려가는 글이다. 내 멋대로 쓰라고 장을 마련해준 것인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뭐가 부족해서일까.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알고 있고 체험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쓴 글이다.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묘사하면 그뿐이다. 상상의 세계를 그리거나 허공의 사실을 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오직 내가 주관적으로 묘사하고 서술한 글이다. 내 멋대로 쓰는 글이다.
세상에 자기 멋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준 문학세계가 있단 말인가. 옛날에는 식자가 붓 가는 데로 쓴 글이 수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쉬운 글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이제야 눈에 들어오고 수필의 맛을 알 것 같다. 나의 인생 후반전은 진행형이다. 지금은 한창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에세이 진수를 제대로 찾아내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 김봉구 교수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