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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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마용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왕의 연대기인가, 승자의 기록인가? 아니면 병사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새겨진 무수한 개인의 이야기인가?

[대한기자신문=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19743, 섬서성 린퉁현에서 한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땅속의 군대'를 마주쳤을 때,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고고학적 발견의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다. 단순한 '발견'을 넘어, 진시황릉 병마용갱은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성취로 자리매김하며 우리에게 역사의 파노라마를 생생하게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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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깨어 있는 역사. 8,000여 점에 이르는 병사, 전차, 말들의 군단은 하나같이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치밀한 갑주, 각기 다른 계급과 병종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예술적 위대함을 넘어, 2,200여 년 전 진() 왕조의 조직력, 기술력, 세계를 제패한 군사적 시스템이 어떠했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살아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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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나 스톤헨지가 종교적·천문학적 상상력의 정수라면, 병마용은 제국의 시스템그 자체를 구현한, 전무후무한 유산이다.

 

병마용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 발견되었는가보다 그 발견이 어떻게 역사 읽기를 바꾸었는가에 있다.

 

그동안 사기등 문헌 기록은 진나라를 법가의 엄격함으로 민중을 억압한 가혹한 제국으로 그려왔다.

 

하지만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군대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 정교하게 표현된 의복의 주름과 신발의 매듭, 갑주의 세부 장식들은 당대 장인들의 숨결과 인간적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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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진나라가 단순히 효율성만을 추구한 기계적 문명이 아니라, 놀라운 예술성과 기술적 정밀함을 겸비한, 이른바 예술적 통제력을 가진 문명이었음을 입증한다.

 

문헌의 기록과 유물의 현장이 대화를 시작한 순간이다.

 

이 발견은 고고학의 방법론 자체를 혁신했다.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보존 작업 3D 스캐닝, 크로마토그래피를 통한 원래 채색 분석, 미세 진동을 막는 지반 강화 공법은 이제 고고학이 삽과 솔만의 학문이 아님을 보여준다.

 

병마용 보호는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학계 간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20세기 고고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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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발굴되지 않은 진시황의 주 릉은 어떨까?

사기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어 놓았다고 기록한다. 최근 지질학적 조사에서 실제로 토양 내 수은 농도가 극도로 높게 나타난 것은 다시 한번 문헌과 과학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는 고고학이 단순한 과거의 발굴이 아닌, 미래로 향하는 탐사임을 의미한다.

 

병마용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왕의 연대기인가, 승자의 기록인가? 아니면 병사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새겨진 무수한 개인의 이야기인가?

 

8,000개의 각기 다른 얼굴은 통일 제국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도 개인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역사는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됨을 일깨워준다.

 

21세기의 우리는 이 깨어 있는 역사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병마용은 중국의 것이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유산이다.

그 흙냄새 나는 위대함은 과거에 대한 경외, 현재에 대한 성찰, 미래 세대를 위한 보존이라는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2,200년의 시간을 견뎌낸 그들의 침묵은, 이제 우리에게 역사를 잇는 목소리가 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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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단독] 황제의 그림자, 역사를 깨우다... 병마용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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