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경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순 없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무거운 준고(峻告)를 던졌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계엄의 책임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대해 “동기와 명분, 목적을 혼동하는 주장”이라 일축하며, 결정적인 비유를 들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넘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 비상권력이 통치권자의 주관적 선의나 정세 판단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법원은 그것이 설령 진심 어린 ‘동기’였을지언정 헌법 질서를 흔드는 ‘내란의 목적’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외형적인 폭력의 수위보다, 헌법 기관의 권능 행사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느냐는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 목적이 수단을 삼킨 시대의 비극
우리는 그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수많은 절차적 파괴를 목격해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의로움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숭고할지 모르나, 그 빛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촛불을 훔치는 순간, 그 행위는 범죄가 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비상권을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것은 이미 ‘수호’의 영역을 벗어난 ‘파괴’의 기록이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의 치밀함이 부족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정상의 참작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를 ‘면죄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실행의 미숙함이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고 권력자가 헌법 체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이다.
● 헌법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발동되어야 하는 법적 장치다.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공화정의 기틀은 무너진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기가 좋으면 결과도 정당하다’는 식의 제왕적 권력 의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선의를 믿기보다 시스템의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이를 즉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단언컨대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지 말라”는 법원의 일갈은,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국가 위기’라는 모호한 수사 뒤에 숨어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라는 ‘빛’의 출처
결국 민주주의라는 빛은 훔친 촛불로는 결코 밝힐 수 없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정직한 연료를 통해서만 타오르는 불꽃이다.
법원의 판결문 속에 담긴 ‘촛불’의 비유는 비단 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을 밝혀 세상을 보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와 민주적 가치를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며 얻어낸 평온은 가짜다. 진정한 국가의 안녕은 성경을 읽는 ‘거룩한 목적’만큼이나, 촛불 하나를 구하는 ‘정당한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