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산균과 효소는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소화 기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한기자신문 건강칼럼 / 이강문 건강칼럼니스트] 한국의 전통 가옥 마당이나 뒤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독대는 단순히 음식 저장을 위한 그릇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곳에 줄지어 놓인 크고 작은 옹기들은 세월의 바람과 햇살, 비와 눈을 함께 견디며 집안의 건강을 지켜온 소중한 동반자였다. 오늘날 냉장고와 스테인리스 용기, 플라스틱 통이 주방을 채우고 있지만, 장독대와 옹기의 생명력과 건강적 가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옹기는 숨을 쉰다. 흙과 모래가 섞여 구워진 전통 옹기는 미세한 기공이 살아 있어 공기가 드나들 수 있다. 이 미세한 호흡 작용이 발효 식품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김치 등이 옹기 속에서 숙성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미생물의 활동은 음식의 맛을 깊고 부드럽게 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로운 성분을 만들어낸다.
특히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산균과 효소는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소화 기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대 과학은 발효 식품의 건강 효능을 입증해 왔다. 그러나 발효가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온도, 습도, 그리고 공기 흐름이 필요하다. 옹기의 투과성은 이러한 조건을 자연스럽게 조절해 주는 천연 발효기 역할을 한다.
플라스틱이나 금속 용기에서는 얻기 어려운 이 장점은 세대를 넘어 내려온 장독대의 지혜를 증명한다.
옹기의 보건학적 가치도 주목할 만하다. 옹기에는 불필요한 화학물질이 거의 포함되지 않고, 소성 과정에서 불순물이 제거되어 위생적이다.
또 표면이 거칠어 습기를 흡수하고 과잉의 수분을 배출해 곰팡이가 쉽게 번식하지 못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음식물이 오래 저장되어도 상대적으로 변질이 더디고 안전하다.
장독대의 존재는 단순히 발효 그릇의 문제를 넘어선다.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놓여 있던 장독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 겨울의 찬바람과 여름의 땡볕을 견디며 발효 식품이 천천히 숙성되는 과정은 자연 순환의 일부였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인에게 점점 잊혀 가는 ‘시간이 주는 건강’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빠른 결과와 즉각적인 편의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발효와 숙성이라는 느림의 미학은 오히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최근 연구에서는 발효 식품이 단순히 소화와 면역력 향상뿐 아니라 대사 질환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다.
전통 방식으로 발효된 된장과 김치는 장내 유익균의 다양성을 높이고, 염증 반응을 완화시키며, 대사성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옹기에서 이루어진 발효는 보다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해 준다.
또한 옹기는 환경 친화적인 그릇이다. 흙과 물, 불이라는 자연의 재료로 만들어진 옹기는 수명이 길고, 사용이 끝나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플라스틱 용기에서 우려되는 환경호르몬이나 미세플라스틱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건강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때, 옹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현대 주거 환경에서 장독대를 마당에 두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된 지금, 옹기를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전통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소형 옹기 발효 용기나 옹기의 원리를 응용한 친환경 저장 용품이 그 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전통을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건강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 생활 방식의 변화를 이끈다.
옹기의 가치가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우리 식탁의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화려한 조리법이나 새로운 식재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을 담는 그릇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발효의 생태이다.
전통 장독대에서 시작된 이 생태는 건강한 장내 미생물, 강한 면역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환경으로 연결된다.
한때 낡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져 외면당하던 장독대와 옹기는, 시대가 바뀐 지금 오히려 더 필요한 존재로 돌아오고 있다. 옹기는 건강을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며 공존해 온 지혜의 상징이다.
우리의 식탁 위 건강을 지키고 지구 환경의 부담을 덜기 위해, 옹기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볼 때다.

"자연의 숨결을 간직한 그릇", 장독대의 옹기는 우리의 몸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도 변화시킨다. 옹기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한 전통의 회복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도움: 이창호 국제중의사 겸 백세보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