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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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숙 수필가는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부산 시단 시 등단, 시집 '새는 새벽을 깨운다', '이제 그렇지 않을 날만 남았습니다' 수필집 '날개를 달다' 부산시단 20호, 38호 작품상, 제18회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대마도에 태극기를 올리다

 

조경숙/ 수필가

 

멀고도 가까운 이웃을 가다. 부산 국제 연안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여행객들로 술렁인다. 대마도로 향하는 쾌속선의 출항을 알리는 고동 소리에 바다는 선잠을 깬 듯 일어난다.

한 시간여의 항해 끝에 도착한 대자연의 땅, ‘일본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대마도가 바로 눈앞이다. 배는 수평에 내려앉은 물안개를 양팔로 휘저으며 뭍으로 다가선다. 친구들과 길지 않은 여행을 고민하던 중 부산과 지척인 대마도가 적격이라며 중지를 모았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한 열도로 본국인 일본보다 한반도와 더 가까운 곳이다. 개인 날이면 서로를 넘볼 수 있을 만치 우리와 지척 지간의 이웃이다. 하나 가깝다 할지라도 가까이 여겨지지 않은 섬, 멀게만 느껴지던 대마도가 아닌가.

 

조결숙 작가.jpg

 

히타카츠항.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골 냄새가 물씬한 선착장이었다. 배가 쉬어가는 히타카츠항은 대마도 북부에 자리한 항구로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청정한 바람과 다소곳한 물결과 다붓하게 모인 집들이 조화롭게 보였다. 조용한 마을이었다. 파도 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숲의 바람 소리에 묻혔는지 고요와 정적이 마을을 재우고 있었다. 한때 약탈과 침공의 칼날을 벼리도록 갈았던 왜구의 본거지였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화롭다 못해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홀로 인근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대마도는 일본 땅,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흥얼거렸는데 산도 길도 집도 사람도 무엇 하나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낮은 지붕 사이로 낙엽 태우는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어우러진 풍경이 우리네 시골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천국의 계단을 올라 동서남북 사면을 조망할 수 있다는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찾았다. 섬과 섬이 둥근 어깨를 포개며 동그마니 둘러앉은 모습이다. 맑은 날이면 대한 해협 너머 우리 강산도 선명히 볼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허기사 해운대에서도 수평선 너머로 점점이 모습을 드러내던 대마도가 아닌가. 국적이 다른 두 항구는 바다란 뚫을 수 없는 벽에 가리어 다가갈 수 없는 연인처럼 그저 오가는 물결만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나 이제 그 벽은 무너졌다. 수문의 고리는 세계를 향해 훤히 열렸다. 뱃길과 하늘의 길로 실상과 가상을 들락이는 사이버란 공간으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시와 공을 초월한 글로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바다는 더 이상 벽이 아니다.

열도의 땅. 이즈하라의 상징인 하치만구 신사에 들렀다. 잠자는 듯한 고요와 적막 속에도 시한폭탄과 같은 핵의 불덩이를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거친 파고와 불의 혀를 지닌 채 용트림 치는 활화산과 불안한 지구대 위에서 혼란스러운 삶을 견뎌야 하는 뜨거운 열도의 민족, 독하고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굴의 정신이 세계 정복의 무모함을 키웠는가. 세계에 맞서 무력 전쟁을 불사하였다. 그들이 쥔 날카로운 칼날의 이면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초조와 진퇴양난의 위기와 위태로움이 아닐지. 하여 내유외강의 일본은 곳곳마다 수많은 신사를 두고 있다. 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이다. 마치 엄마 품을 벗어나면 불안감에 발을 동동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유아와 같이 주문을 걸듯 주술을 외우며 신사 주위를 맴돌고 있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그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은 이제껏 미국이 전면전을 벌여온 상대 가운데 가장 낯선 민족이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일본인의 극도의 양면적인 민족성에 대하여 역사적 자료를 들추어가며 실상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 민족은 이런 기고만장 길들여지지 않은, 열도(列島)에 열도(熱島)를 겸한 야생의 민족을 변치 않는 이웃으로 여겨왔다. 이웃으로의 인과 정을 베풀어가면서. 피에 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울분과 설움이 거대한 눈물의 산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역사는 흐른다. 고이지 않는다. 고이지 않고 흘러야 하는 게 어디 강뿐이겠는가. 살아 있는 것은 살기 위하여 좀 더 나은 세대를 위하여 끊임없이 흘러야 할 것이라. 우리는 이제 결속의 우방이고 헤어질 수 없는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 대마도는 한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산한 거리는 관광객들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대마도인의 생계를 한국이 도맡고 있는 셈이다. 한때 우리에게 총칼을 겨누며 침공의 야욕을 불태웠던 이곳을 우리가 먹여 살리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라니. 일본은 우리 선인의 울분과 격노와 한과 애통함과 서러움이 묻어있는 피와 눈물의 땅이다. 역사의 얼룩은 골수에 새겨져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테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고. 실패와 좌절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슬기의 민족혼이 우리에게 강과 같이 흐르고 있다.

쓰시마섬에 피어난 우정. 한국의 대학생들이 쓰시마 서쪽의 미나토해변 일대에 모였다. 우리 연안에서 해류를 타고 떠밀려온 소주병과 라면 봉지 등, 우리 쓰레기를 우리 손으로 치우겠다며 부산 대학생들이 두 팔을 걷었다. 솔선하며 나선 것이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해변 청소에 쓰시마 인근 학생들과 주민들도 다 함께 마음을 보태고 있다는 미담이다. 대마도에 향기로운 우정의 꽃이 피어난다. 젊은 신세대의 참마음이 쓰시마에 태극기를 펄럭이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항구 도시 부산과 대마도는 문화 교류 사절의 도시답게 두 나라 간 사랑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금은 ‘K-르네상스 시대’. K-문화강국이 된 한국, 일본 땅에 코리아 붐을 일으켰다. 곳곳마다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하여 한때 우리의 민족성은 물론 문화 말살과 억제와 탄압을 일삼던 일본이 지금 K-문화와 K-먹거리에 푹 빠져 있다. K팝이 일본 열도를 달군다. 열도의 삶을 지배한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휘두른 총과 칼과 피를 대신해 친선과 화합과 행복의 날이 없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민족의 흥과 맛이 깃들은 ‘K-문화란 영혼과 정신의 깃발을 든 것이다. 세계는 케이 컬처란 문화의 쓰나미에 함몰되었다. 케이 문화가 도화선이 된 케데헌에 전 세계 남녀노소가 몸살을 앓는다. 우리의 시선은 대마도가 아니다. 대마도 너머 태평양 해협을 가로질러 전 세계를 향해 평화와 화평의 구도를 잡는다. 그 대항해의 출구인 국제 항구 도시 부산, 희망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대마도에 태극기를 올리다. 많은 일본인 앞에서 친구의 권유로 불렀던 아리랑이 작은 섬 대마도에 태극기를 올린 듯 자랑스럽다. 피와 눈물로 올렸던 태극기, 죽음과 맞바꾸어야 했던 자유의 깃발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대마도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조경숙 약력

 

에세이문예수필 등단 부산 시단시 등단

시집 새는 새벽을 깨운다, 이제 그렇지 않을 날만 남았습니다

수필집 날개를 달다

부산시단 20, 38호 작품상, 18회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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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권대근 교수 추천, 이 한 편의 수필, 조경숙의 '대마도에 태극기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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