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남해군의 미조항(彌助港)은 당시 남해 수로를 지키던 중요한 포구로, 임진왜란의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이순신리더십 저자]=한국사에서 임진왜란(1592~1598)은 국운이 바다에서 결정된 전쟁이었다. 조선의 육군은 초기에 패전을 거듭했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연전연승하며 전세를 바꾸었다.
이때 남해안의 항구와 포구들은 단순한 해상 교통로를 넘어 조선 수군의 전략적 거점이자 민중의 생존 기반이 되었다. 그중 경남 남해군의 미조항(彌助港)은 당시 남해 수로를 지키던 중요한 포구로, 임진왜란의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 남해 수로의 요충지, 미조항
미조항은 남해군 남단에 자리한 천연의 포구로, 예로부터 남해와 거제를 연결하는 해상 교역로의 거점이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이르러 남해안 해상 교통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했고,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피난처로 널리 알려졌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한산도, 노량 등지에서 왜군과 싸울 때에도 미조항은 병력과 군수물자를 집결시키는 중요한 보급 기지 역할을 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남해·사천·한산도의 수로와 포구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해전의 지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조항은 당시 작은 포구였지만, 지리적으로 남해 해협의 출입을 관찰하고 왜군의 동향을 살피기에 유리했다. 이러한 위치 덕분에 남해 수로를 통제하는 전초기지로 쓰였다.
◘ 임진왜란과 남해의 민중
전쟁은 남해 어민과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남해안의 포구와 어장은 전쟁터와 병참 기지로 변했고, 수많은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수군의 식량과 병기를 보급하고, 어선을 군선으로 개조해 제공하는 등 전쟁을 지원했다.
미조항을 비롯한 남해의 포구들은 단순한 해전의 무대가 아니라 백성과 군이 함께 항전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미조항 인근 주민들은 전쟁 동안 해안 방어에 참여하고, 왜군의 동태를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남해 어민 공동체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선 자발적 항전의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남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민담에도 남아 있다.
◘ 해전의 승리와 바닷길의 의미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이 거둔 승리의 결정적 배경에는 남해와 통영 일대의 바닷길이 있었다. 한산도 대첩과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은 모두 남해안을 무대로 벌어졌다.
바다를 제압한 조선 수군은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육지의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결국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미조항은 규모는 작았지만 이러한 바닷길 전략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해안의 만곡진 지형과 완만한 수심 덕분에 함선이 정박하기 용이했고, 육지와 연결된 보급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오늘날 항구 앞바다에는 당시 조선 수군이 주둔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 항구에서 관광지로
전쟁의 포연이 걷힌 뒤에도 미조항은 어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미역과 해산물이 집산되던 포구로 유명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멸치잡이로 다시 이름을 알렸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미조항의 역사에는 전쟁의 상흔과 함께 생업의 지혜가 공존한다.
오늘날 미조항은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 어항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항구 풍경과 멸치 회,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며, 매년 봄이면 멸치잡이로 북적인다.
항구 한켠에는 임진왜란 당시 남해 주민과 수군의 항전을 기리는 기념비와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방문객들에게 바다와 역사의 만남을 전한다.
◘ 역사적 의의
미조항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단순한 지방의 포구를 넘어 전략적 군사 거점이자 민중 항전의 현장으로 빛났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그 항구의 역사를 이어왔다.
역사는 특정 인물의 영웅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조항처럼 이름 없는 포구와 그곳에서 살아온 민중의 이야기가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역사가 된다.
임진왜란과 미조항의 만남은 바다가 곧 조선의 생명선이었음을 일깨워 주며, 오늘날에도 남해의 푸른 바다 위에 그 교훈이 흐르고 있다.
글/사진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산둥성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웨이하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종신교수,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 의장, 안중근평전, 이상설평전,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 평전, 시진핑, 위대한 중국을 품다. 등 50여권 집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