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수)]“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 모순적인 문장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투표로 뽑힌 지도자가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를 서서히 훼손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목격하는 ‘연성 독재(soft dictatorship)’의 실체다.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과거의 독재가 군복을 입고 총칼로 등장했다면, 오늘의 연성 독재는 선거와 여론의 미소 뒤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민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법과 제도를 ‘민주적 절차’라는 이름으로 변형시킨다. 겉으론 합법이지만, 속은 권력 집중이다.
연성 독재는 ‘민주주의 피로감’을 교묘히 이용한다.
자유와 다양성, 비판과 토론은 민주주의의 본질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분열로 보일 때 사람들은 강력한 리더를 원한다.
“복잡한 절차보다 효율을”, “자유보다 안정과 질서를” 외치며, 스스로 권위주의적 지도자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민주주의가 낳은 시민이, 민주주의의 피곤함을 이유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부드럽고, 눈에 띄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는 직접적으로 탄압되지 않지만, 광고나 압박, 사주의 교체를 통해 점진적으로 길들여진다.
사법의 독립은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인사권과 예산권을 통해 권력 친화적으로 변한다.
시민의 표현의 자유는 남아 있지만, 사회적 낙인과 온라인 여론의 폭력 속에서 자율적 검열이 자리 잡는다.
이 모든 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사람들은 쉽게 반발하지 않는다.
연성 독재의 가장 무서운 점은, 국민이 그것을 ‘독재’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자신을 “국민의 선택을 받은 민주적 지도자”라 주장하고, 시민은 “그래도 우리는 투표를 하니까”라며 안심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속에 견제, 비판, 다양성, 그리고 시민의 용기가 함께 숨 쉬어야 한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낳은 제도적 정당성에 의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독재는 이제 무력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을 위한 효율적인 정부”,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는 리더십”이라는 포장으로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연성 독재의 달콤한 함정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완성형이 아니라, 항상 방어해야 하는 체제다.
자유를 지키는 일은 불편하고, 느리며, 때로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합법적 권위주의’의 안락한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될 것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지 않도록, 우리 각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의 경계심만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성 독재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