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협력을 넘어 ‘문화의 공감력’으로 이어지는 신뢰의 시대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문화 칼럼니스트] 한중 관계는 단순히 지정학적 인접성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적 혈맥 위에 세워져 있다.
언어와 예술, 철학과 예절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수천 년 동안 교류하며 서로의 정신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겨왔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디지털 시대의 속도 속에서, 이러한 문화적 유산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의 언어’로 다시 소통하고, 상호 존중과 이해의 토대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 문화는 외교의 뿌리이자 신뢰의 시작
국가 간 관계는 경제나 안보의 이해로 구축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신뢰는 문화에서 자란다.
한중 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때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는 문화적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
외교의 무대에서 문화는 단순한 부속이 아니라 인간적 공감의 언어, 곧 ‘보이지 않는 외교관’이다.
예컨대 한국의 한복과 중국의 한푸(漢服)는 모두 전통의 미학을 담은 의복이지만, 그 안에는 각기 다른 미적 철학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
이 차이를 경쟁의 시선이 아닌 문화 다양성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호 이해의 출발점이다.
문화교류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역사를 배우고, 그 속에 담긴 삶의 방식과 정서를 존중하는 인문적 과정이다.
■ 문화의 공감력, 경제보다 강한 연결고리
오늘날 세계는 자국 중심주의와 문화 단절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언제나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인간적 힘을 발휘해 왔다.
한중 문화교류의 본질은 바로 이 ‘공감의 힘’에 있다. 음악과 미술, 문학과 영화 같은 예술의 언어는 경제지표보다 더 깊이 마음을 움직인다.
최근 양국 간 청년 문화교류 프로그램, 전통예술 교류전, K-콘텐츠와 중국 미디어의 협력 프로젝트 등은 세대 간 이해의 다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교류는 과거의 편견을 넘어 새로운 상호 인식의 장을 열며, 단순한 문화 소비를 넘어 정신적 교류와 감성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 역사 속 문화교류, 미래 협력의 길을 비추다
한중 문화의 교류는 그 뿌리가 실로 깊다. 고대 실크로드의 문물 교류, 삼국시대 불교 전래, 조선과 명·청 간의 사절 외교 등은 모두 문화가 외교의 핵심 수단이었음을 증명한다.
문화는 시대를 넘어 갈등을 완화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오늘날에도 그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한 21세기에도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은 여전히 감성의 언어이다.
문화가 없는 경제 협력은 지속될 수 없으며, 이익만을 좇는 관계는 위기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반면 문화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는 어떠한 충돌 속에서도 견고하다.
따라서 양국은 경제·외교 중심의 협력 패러다임을 넘어, 문화 기반의 협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 새로운 시대, 문화 외교의 전략적 전환
오늘날의 문화 외교는 더 이상 단방향 홍보가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교차 번역하고, 공감 가능한 언어로 재해석하는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은 공동 문화콘텐츠 개발, 전통예술 교류 확대,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강화 등 실질적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교장 최명호)의 대표적인 ‘글로벌현장 학습캠프’와 한중교류촉진위원회의 학술포럼이 그 모범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가상문화교류 플랫폼 구축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화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이해의 확장과 상호 공감의 전략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 문화는 미래를 잇는 가장 인간적인 다리
한중 문화교류의 가치는 ‘함께 성장하는 문화’에 있다.
문화는 정치보다 오래 남고, 경제보다 깊이 인간의 마음을 울린다.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 속에서 공통의 정서와 감성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한중 문화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는 차이보다 닮은 점이 더 많다.
문화교류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정신적 자산, 그리고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동력이다.
결국 문화는 국가 간 신뢰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평화의 씨앗이다.
한중 양국이 이 공통의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존중의 새로운 장을 열 때, 비로소 진정한 협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길 위에 ‘문화’라는 이름의 다리가 굳건히 놓여야 한다.
글·사진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한중문화칼럼니스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