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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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웩시트를 통해 본 지방자치의 민낯 ​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2019년 캐나다에서 "웩시트(Wexit)"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은 또 하나의 지역 이기주의나 포퓰리즘적 해프닝쯤으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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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하지만 웩시트는 단순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 구조에 대한 깊은 불신과, 수도권 중심의 자원 분배 방식에 대한 항의였고, 무엇보다 지역이 정치적으로 지워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경고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지방 소멸"과 "정치적 탈중앙화 요구"는 웩시트의 그림자를 닮아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은 존재하되,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방자치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지방이 자치할 수 있는 권한도, 자율성도, 재정도 크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판 웩시트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자치입니까, 지시입니까?" 허울뿐인 지방자치 30년

올해로 한국 지방자치제가 부활한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역 현장에서는 "우리는 여전히 중앙정부의 지시를 기다리는 존재"라는 자조가 들려온다.

헌법상 지방자치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지방정부가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인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재정 자율권 부족이다. 지방정부의 재정은 중앙정부의 교부금과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은 전체 예산의 20~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예산 편성의 주도권뿐만 아니라 지역 정책의 자율성을 극도로 제한한다. 해서, 지역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마련해도, 중앙정부의 승인과 예산 없이는 실행할 수 없다.

또한 인사권, 교육권, 복지 결정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통제적 개입"은 여전하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하려고 해도, 결국 중앙 부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름만 '지방정부'이지, 실제로는 하급 행정기관에 불과한 현실이 30년을 지나도 그대로인 것 같다.

둘째,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지도 오래다.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수도권은 전국 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고, 국내 총생산의 55%를 차지한다.

중앙부처 대부분이 서울과 세종에 집중되어 있고, 주요 언론사•대기업•금융기관도 수도권에만 포진해 있다.

반면 지방은 인구 유출과 산업 기반 붕괴, 청년 이탈, 고령화 등으로 "인구 감소-경제 위축-정치적 소외"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매번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중앙이 자율권을 내놓지 않는 이상 지방은 스스로 설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웩시트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캐나다 서부 주민들이 느꼈던 "정치적 대표성 박탈"과 "경제적 자원 분배의 불공정성"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방 주민들도 똑같이 체감하고 있다.

단지, 우리는 '독립'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다.

셋째, "지방 소멸"을넘어서 "지방 이탈"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지방 소멸은 "인구 문제"나 '출산율'의 프레임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이 정체성과 자율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간다면 지방은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로부터의 "정서적 이탈"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지방이 정치에 기대하지 않는 사회, 중앙정부의 정책에 냉소하는 사회, 서울 중심 언론과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는 이미 분열의 초기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 독립이든 아니든, "심정적 웩시트"는 현실이 될 수 있다.

한때 지방 의회가 광역 단체장을 불신임하고, 중앙과 대립각을 세우던 장면들, 교육자치 논란에서 드러난 중앙부처와 교육청간 갈등, 전북•경북 등지에서 일어난 혁신도시 재배치 요구 등은 단지 지역 불만이 아니라, "제도적 권한"에 대한 요구 해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넷째, 지방 분권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더 많은 보조금이나, 일회성 사업 유치가 아니다. 진정한 해법은 지방이 주도권을 갖고 자기를 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 구조의 변화다.

다음 세 가지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 재정 분권의 실질화

지방세 비율을 확대하고,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단순한 교부금이 아닌, 스스로 정책을 설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예산 구조가 필요하다.

2. 입법•행정 권한의 이양

교육, 복지, 도시계획 등 주요 영역에서 지역 실정에 맞는 법령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한다.

3. 지방 정치의 자율성 보장

중앙 정당 중심의 지방선거가 아닌, 지역 정당 활성화 및 기초단체장 권한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 정당 중심이 아니라 지역 중심의 정치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제는 지방이 떠나기 전에, 정치가 내려와야 한다.

'웩시트'는 단지 캐나다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중앙집중의 구조 속에서 지역이 어떻게 외면당하고, 어떻게 반발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대한민국도 이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방이 떠나기 전에, 정치가 먼저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 더 많이 말하고 덜 들으려는 중앙이, 이제는 조용한 지방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때다.

지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할 때, 서서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이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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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웩시트 대책,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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