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적 신뢰란, 상대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의 인간적 정서를 공감하는 것이다.
[대한기자신문] 세계는 지금 물질적 풍요를 넘어,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가 국제 관계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중 수교 33여 년, 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깊은 협력 관계를 쌓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감정의 골과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
경제적 교류만으로는 완전한 신뢰를 세울 수 없고, 진정한 상생은 인문학적 신뢰를 토대로 할 때 가능하다.
인문학적 신뢰란, 상대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의 인간적 정서를 공감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외교 문서나 협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비로소 구축되는 신뢰다.
우리는 오랜 세월 한자를 공유하며 사상과 문화를 나눴고, 공자의 ‘인(仁)’과 주자의 ‘도(道)’가 서로의 삶에 스며 있었다. 이러한 공통의 인문 기반 위에서 한중은 다시금 ‘신뢰의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냉정하다. 국제정치의 이해득실이 관계를 좌우하고, 여론의 파도는 오해를 키운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 위의 따뜻한 감성’이다. 상대를 향한 공감과 배려, 그리고 문화적 이해 없이는 어떤 협력도 지속될 수 없다. 한중관계는 거대한 시장 논리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전한 상생의 출발점이다.
건전한 상생은 일방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번영을 의미한다. 한국은 기술과 혁신의 강점을,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양국이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인문적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면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간 외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 외교가 일시적이라면, 민간 교류는 지속적이다. 예술·학술·청년교류와 같은 인문 교류는 국가 간 이해의 간극을 메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한중관계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다. 21세기 세계 질서가 다극화로 재편되는 지금, 양국은 상대를 위협으로 보는 대신 협력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선입견과 편견 대신, 역사 속에서 함께 쌓아온 신뢰의 자산을 되살려야 한다. 인문학은 바로 그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한중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신의(信義)’와 ‘화합(和合)’이라는 가치에서는 통한다. 한국의 ‘정(情)’과 중국의 ‘인정(人情)’은 다르지 않다.
이 따뜻한 인간적 정서를 외교의 토대 위에 세운다면, 양국 관계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바로 미래를 여는 열쇠다.
이제 한중 양국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 문화적 이해와 인문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협력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대학 간 연구 협력, 청소년 교류, 문화예술 교류 등은 미래 세대에게 상생의 감각을 심어주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인문 교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단순한 뉴스 전달을 넘어, 상호 존중과 신뢰를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공감과 협력의 방식이 필요하다.
인문학적 신뢰는 단순한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 협력의 기반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신뢰가 구축될 때, 양국은 진정한 의미의 상생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다.
역사는 증명한다. 신뢰 없는 동맹은 오래가지 못하고, 신뢰 위의 우정은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중이 진정으로 미래를 함께 열어가려면,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적 신뢰’의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의 초석이자, 인류 공동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