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다른 노선을 걷는 세 지도자가 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는 이미 ‘정치적 파장’이라는 단어를 넘어 세계 질서의 방향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발행인] 2025년10월은, 에이펙(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다자 정상회담이 아니다. 그 무대 위에서 세계는 세 명의 상징적 인물을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
서로 다른 노선을 걷는 세 지도자가 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는 이미 ‘정치적 파장’이라는 단어를 넘어 세계 질서의 방향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트럼프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자국 이익 중심의 경제노선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과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이 다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동맹국들에게 긴장감을 안겼지만, 동시에 새로운 협상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인의 계산된 수사다.
시진핑 주석은 한층 절제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인류공동창의’와 ‘인류운명공동체’를 다시 언급하며 중국식 다자주의의 복귀를 선언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는 달리, 시 주석의 메시지는 포용과 연결, 그리고 창의를 강조했다.
그의 메세지 속에는 중국의 체제 자신감과 자국 중심의 질서 재편에 대한 강한 의지가 동시에 배어 있었다.
그 사이, 한반도의 리더로서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와 평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대결이 아닌 협력의 시대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경제안보, 공급망, 기후위기 등 인류운명 보편적 과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이끌것이다.
이 대통령의 메세지는 강대국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견국 외교의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세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미·중·한 3각 구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트럼프의 실리, 시진핑의 질서, 이재명의 조율. 이 세 가지 리듬이 맞물릴 때 한반도는 새로운 외교적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그 리듬이 어긋난다면, 한반도는 미중 패권 경쟁의 회오리 속으로 다시 끌려들어갈 위험도 존재한다.
이번 에이펙에서 드러난 한반도 외교의 핵심은 ‘균형’이다. 이재명 정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현실적 외교를 표방해왔다.
미국의 안보 틀 안에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유지하고, 한편으로는 아세안·유럽과의 다자주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트럼프가 다시 국제무대에 등장하면서 동맹의 비용을 재계산하는 시점에서, 한국의 외교는 ‘동맹의 조정자’로서 존재 이유를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시진핑의 전략 역시 단순하지 않다. 그는 한반도를 미국 견제의 완충지로 보면서도,
한국이 자율적 외교 노선을 유지하길 바란다.
중국에게 한반도는 경제·안보·문화가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신냉전의 균열지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 주석의 발언에는 한반도의 ‘중간적인 평화지대화’를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뉘앙스가 있다.
트럼프는 에이펙 무대에서 ‘한국의 관세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전기차·배터리·철강 등 일부 품목에 대한 미국 내 불공정 무역 구조를 지적하며 재협상을 시사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상당한 압박이지만, 역으로 보면 새로운 산업 협력의 통로를 열 기회이기도 하다.
즉, 위기 속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 과제라 할 수 있다.
이제 세계의 시선은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에이펙 이후의 국제정세는 ‘미국의 이익, 중국의 질서, 한국의 선택’이 어떻게 얽히느냐에 따라 국제질서는 달라질 것이다.
그 속에서 한국이 보여줘야 할 것은 단순한 중간자 외교가 아니라, 가치와 실리를 아우르는 고도화된 ‘전략적 균형외교’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강대국의 뒤를 따르는 나라가 아니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국이자 민주주의의 선도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이국제 질서의 균형추로 작용해야 한다.
트럼프의 현실주의, 시진핑의 질서주의, 그리고 이재명의 통섭주의가 진정한 대화의 리듬으로 이어질 때,한반도는 ‘갈등의 축’이 아닌 ‘협력의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에이펙의 가장 큰 메시지는 ‘선택의 시대’다.
한국은 더 이상 수동적 외교의 시대를 살지 않는다.
누구의 편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지향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그 중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절제된 메시지와 외교 균형 감각이 한반도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에이펙의 삼박자는 단순한 정상들의 만남이 아니라
한반도 외교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대의 실험’이었다.
한국이 그 중심에서 실용과 신뢰의 외교를 유지한다면, 이번 회담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세기의 협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