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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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부 수필가는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기),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미8군 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이며,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 대상, 제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수필집으로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 등이 있다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고수부/ 수필가

 

지난달 18일 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11집 수필집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북토크콘서트였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독자와 호흡하며 빛을 발하는 순간을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출판기념회를 넘어 내 삶과 글의 여정을 함께 돌아보고 나아가 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수부 사진.jpg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자리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금년 초 수생반 문우 한 분이 북토크콘서트를 열었을 때 부러움이 컸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를 가져야지하고 다짐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여겼다. 책을 한두 권 더 낸 뒤 여유롭게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11집은 조촐히 기념식사나 하며 넘어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이 나의 계획을 바꾸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셔서 장소만 제공하시오, 나머지 진행은 모두 맡겠으니 부담 갖지 말고 북토크콘서트를 열자고 하신 것이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행운이 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기회는 잡아야 한다. 망설이다가는 날아가 버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장소를 정하고 수생반 반장과 회원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등 하나하나 진행을 시작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 유명 작가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범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솟았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인 계간 에세이문예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찾아가는 북토크콘서트무대였다. 두 번째로 마련된 이 무대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진행은 교수님께서 맡아 일문일답 형식으로 나의 수필 세계를 풀어갔다. “처음 수필은 어떻게 시작했는가에서부터 등단작은 어떤 작품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무엇인가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 이야기에 이어 성장 배경, 군 생활, 대학원 도전기, 아내와의 인연까지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출판기념회와 달리 북토크콘서트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진행자와 저자의 대화 속에서 내 글과 삶이 드러났고 때로는 내 자신을 알리고 홍보할 기회도 되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해 스피치 학원까지 다닌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 앞에서 발표하면 긴장이 된다. 그래서 아내와 딸들이 가급적 짧게 대답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막상 자리에 서니 질문에 성의껏 답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행히 청중의 표정이 따뜻했고 분위기는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순간은 두 딸의 참여였다. 평소 이런 행사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1집에 딸들 이야기가 많이 실렸고 교수님의 서평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된 듯하다. 큰딸은 처음엔 망설이다가 행사 하루 전 참석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둘째 딸은 말은 못하겠다며 옆에만 앉아 있겠다고 했지만 결국 짧게나마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행사 중간에 두 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큰딸 주연이는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으셨을 때 안국동 지하철을 지나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대목에서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고 함께한 회원들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렁이는 듯했다. 둘째 딸 역시 준비해 온 글을 또박또박 읽으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나는 속으로 감사하며 이 자리가 단순히 나 혼자의 자리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는 회원들의 발언 시간도 주어졌다.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케이크를 자르고 꽃바구니 세 개가 무대 옆에 놓였다. 붉은 장미, 분홍빛 백합, 하얀 국화가 어우러져 눈부신 빛을 냈다. 그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글을 응원하는 마음이 모여 한 아름의 꽃다발로 피어난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켠에 꽃바구니를 두었다. 소파에 앉아 바라보니 그 화려함이 여전히 감동과 겹쳐졌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화무십일홍,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다. 북토크콘서트의 환희도 언젠가는 기억 속으로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면 씨앗이 남아 새로운 생명을 틔우듯 그날의 감동은 내 삶 속에 씨앗처럼 심겼다. 그것은 또 다른 글로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추억으로 남듯 북토크콘서트의 기억도 내 글의 한 줄기 빛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거실에 앉아 꽃바구니를 바라본다. 꽃잎은 시들어가지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은 여전히 향기롭게 남아 있다. 언젠가 꽃이 모두 져도 그날 밤의 박수와 눈빛, 따뜻한 온기는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만 글은 다르다. 꽃은 열흘이면 지지만 글은 쓰는 순간부터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 독자의 마음에서 다시 피고 또 피어난다. 어쩌면 수필이야말로 시들지 않는 꽃밭이 아닐까. 이번 북토크콘서트에서 받은 감동은 바로 그런 확신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펜을 든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길을 걸어간다.

 

 

▼고수부 작가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졸업(학사), 동국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석사), 월남 맹호부대 참전(ROTC 3), 미 육군공병학교 측지과정 수료, 8JUSMAG-K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국방부 관리정보실(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 정년퇴임, KJ 스피치 자문위원, 순수문학 등단(2003),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이며, 순수문학 우수상, 전쟁문학상, 20회 순수문학 대상, 7회 에세이문에문학상, 대통령 표창,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수필집으로 댓돌 위의 갈색 구두』 『진주반지』 『아침 한 때의 행복』 『손자의 비밀』 아내』 『석양에 물든 가을 바다』 『Beautiful Story(아름다운 이야기)』 『이 모습 이대로』 『추억의 집』 『길에 선 나무는 웃지 않는다』 『어둠을 건너는 빛처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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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의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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