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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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용 수필가는 전남 완도 출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수필 등단, 월간 문학세계 운영 홍보위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동작문인협회 운영이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주) 삼성주얼리 대표

시간의 맛

 

최병용/ 수필가

 

흔히들 지금을 백세시대라 부른다. 반세기 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환갑을 넘긴 이들이 드물었다. 그 시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58, 여성 66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성 80세 여성 86세라고 하니,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가, 그 물음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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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을 때 조선족으로 나와는 형, 아우 하며 매우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고 청도에서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심양에 도착했다. 그 친구는 북경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때 주석의 주치의를 지낸 공산당원 신분이라 그런지, 나를 위해 특별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집주인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는데, 반갑게도 같은 씨라며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숙소 겸 손님방으로 마련된 그 집은 고즈넉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집 안 곳곳에는 전역식 때 받은 표창장과 훈장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고, 오래된 목제 찻상이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주인이 내어준 전통차를 마시며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은한 차향이 방안을 감돌고,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던 밤이었다.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해 그곳에 정착했고. 그는 중국 군사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해 1·4 후퇴 당시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그는, 이후 중국군 장성으로 승진해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영웅칭호를 수여 했고, 전역 후에는 영웅 대우를 받으며 연금과 주택이 제공되어 지금껏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같은 성씨라는 인연 덕분인지 그는 나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내 나이를 묻기에 올해 환갑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참 좋은 나이네하고 웃었다. “어르신, 벌써 환갑인데 무슨 좋은 나이입니까하고 되물었더니, 그는 찻잔을 들었다가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살아보게. 그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였는지 알게 될 걸세그의 말은 세월을 건너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묵직한 예언처럼 들렸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았다. “나는 예순에 퇴역했네. 그땐 아직 세상을 다 가진 듯했지. 일흔까지는 여전히 청년이라 생각하며 살았네. 그런데 일흔을 넘으니 이곳저곳 고장이 나더군. 그래도 칠십오까지는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았지.” 그의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인생의 고개마다 겪어야 하는 변화에 대한 조용한 예언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짐을, 세월이 흐를수록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순 무렵엔 아직 청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마음은 여전히 젊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지만 칠십 고개에 이르니 몸이 서서히 변화를 알려온다. 체력은 떨어지고, 기능은 약해지며, 회복도 더디다, 한때는 오랜 해외 생활의 탓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세월의 자연스러운 순리임을 안다. 일흔을 넘어서니 몸이 낡은 기계처럼 이곳저곳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고, 몇 차례 수술도 받았다. 칠십오 세를 넘기자 손 떨림 현상도 느껴졌다. 칠십 대 후반의 주위를 보면 보청기도 끼고, 돋보기를 쓰며, 임플란트도 몇 개씩 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그 세월의 흔적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감사할 일은 많다. 눈은 여전히 작은 글씨를 읽을 만큼 밝고, 청각도 무리가 없다. 치아도 원래 그대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해 눈이 가끔 피로하긴 하지만, 그 또한 살아 있음의 증거일 터이다.

 

칠십 대 후반에 들어서자, 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등 또 다른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수술 후유증인가 의심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노년 대부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임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엇보다 깊은 잠을 자고,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럴 때마다 심양에서 만났던 그 어른의 말이 떠오른다. “칠십오 세 이후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 덤으로 주어진 이 시간, 나는 마음의 속도를 늦추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몸 여기저기 녹이 슬고는 있지만, 윤활유 치듯 마음을 다스리며 그 늦춤도 배워 간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 본다. 이제는 젊은 날의 불꽃보다, 서서히 익어가는 온기가 좋다.

 

곱게 익어가는 홍시처럼, 세월의 빛깔을 그대로 품은 채 천천히, 따뜻하게 내 황혼을 익혀가고 싶다. 비록 젊은 시절의 모든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익어가는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날이 와서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도, 한 알의 홍시처럼 곱게 익은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으리라.

, 참 좋은 인생이었다.”

 

최병용

 

전남 완도 출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수필 등단, 월간 문학세계 운영 홍보위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이사, 동작문인협회 운영이사,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동인, ) 삼성주얼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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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이 한 편의 수필, 최병용의 '시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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