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 이주민의 오늘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오랫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언급되어 왔다. 흩어진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정체성의 긴장과 문화적 갈등을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말은 특정 민족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30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 여성, 다문화 가정의 자녀, 유학생, 난민 신청자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들의 삶은 곧 한국 사회 안에서 재현되는 디아스포라의 딜레마다.
첫째는 정체성의 긴장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외모나 이름 때문에 종종 “너는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한국인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외부인으로 호명되는 경험은 그들에게 혼란을 남긴다.
부모의 고향을 이어받으려 하면 ‘한국적이지 않다’는 시선을 받고, 한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려 하면 ‘뿌리를 잃는다’는 불안을 느낀다. 이중 정체성의 긴장은 곧 디아스포라적 삶의 핵심적 딜레마다.
둘째는 소속감의 부재다.
많은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여전히 제도적 차별과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고국에서는 ‘떠난 자’로서 낯설고, 한국에서는 ‘이방인’으로 머무른다.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경계인의 삶. 이것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가능성도 숨어 있다. 이주민과 그 자녀들은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며, 문화와 언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서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새로운 음악, 문학, 예술을 창조해내고 있으며,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딜레마는 단순한 ‘고통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의 토양이기도 하다.소속감 부재, 이방인,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여성, 제도적 차별, 유대인 공동체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동화와 배제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주민이 ‘우리 사회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결국 또 다른 소외를 낳는다.
대신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 즉 ‘공존의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으로는 교육과 노동, 복지 영역에서 이주민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사실 한국인 또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주, 일본, 미주로 이주했고, 전쟁과 산업화의 과정에서도 해외에 나가 새로운 삶을 개척한 이들이 많았다. 오늘의 한국은 역설적으로 ‘흩어진 경험’을 가진 민족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딜레마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주민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남겨둔다면, 한국 사회는 결코 성숙할 수 없다.
낯선 타자의 경험 속에서 우리 자신을 비추고, 경계인의 시선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떠남과 머묾 사이에서, 뿌리와 가지 사이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써 내려가야 한다.
한국의 미래는 이주민과 함께 그려질 수밖에 없다. 디아스포라의 딜레마를 고통의 이야기에서 가능성의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을 때, 한국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다문화 공동체로 성숙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