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4(금)
  • 전체메뉴보기
 
  • 김봉구 수필가는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러러보다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졸업한 고등학교 행사에 자부심과 명예를 갖는다.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행사를 열지 못하는 해에는 원로 졸업생들은 애가 탄다. 그들은 기별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격려와 용기를 북돋운다. 한편 고등학교 장학회 배경과 장학사업 취지를 전해 들으면서 감명을 받는다. 원로 중에는 장학의 뜻을 가진 분들이 있다. 후배들이 세상에서 좋은 기회를 잡아 성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김봉구1.jpg

 

재경강릉중앙고동창회는 임원회의가 열리는 어느 날 나에게 특별히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고등학교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밝혔다. 전국에서 가장 잘 단결하는 학교 선후배 간의 보살핌과 끈끈한 정이 묻어 남을 느낄 수 있는 학교 우리 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자부심 등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 대한 진솔한 인사말을 이어가는데도 불구하고 3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진지하게 경의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학교 후배들이 떠 올라서 장학금으로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박수를 받으면서 인사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잘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교명은 농고에서 개명되었으나 학교 전통과 동문 의식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재경동창회의 모습도 뚜렷하게 계승되고 있다. 동창회는 출석률이 높고 또 연령이 높을수록 출석률이 높았다. 그만큼 원로들이 적극성을 보이면서 활발히 참석한다는 점은 모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력한 유대감과 결속력은 졸업생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재경동창회가 5월 채육대회를 개최하면 강릉에 있는 총동창회에서 버스를 대여하여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한편 재경동창회는 단오제 겸 농상축구대회와 추계 체육대회에는 버스를 대여하여 강릉으로 향하는 것이 관례였다.

장학금 마련을 위한 준비는 또 다른 문제였다. 봉급 생활자로서는 매월 100만 원씩을 10개월간 저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아내의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좋을 때였다. 중앙고 동창회에 참석해서 연설하는데 졸업생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존경심을 표시하는 분위기여서 장학금 천만 원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입장이 궁금했다. 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할만한 상황이네요하면서 잘 마무리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아내의 이해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마움을 간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통장 저 통장을 털어서 천만 원을 만들어 주면서 약속한 것은 빨리 보내는 것이 좋다면서 아내가 송금해 주라고 재촉했다.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로 천만 원을 송금하려고 할 때 은행 창구 직원이 이렇게 큰 금액을 장학금으로 내느냐고 놀라워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보내는 장학금이라고 말하면서 잠시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재경동창회 원로들은 모교 전통 동창회 발전 체육대회에 관심이 지대하다. 몇 년 전에는 동창회장 선임이 늦어져 체육대회를 열지 못한 해가 있었다. 원로들이 직접 나서서 해당 졸업기수의 대표자들을 만나 격려하면서 연례행사와 동창회 전통은 잘 이어 가야 한다는 명분을 심어 주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등학교 2년 후배인 박병설 씨를 만났다. 그는 34회 졸업생으로 재경 강릉중앙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 와 만남은 동창회와 모교의 현황을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모교 원로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7-8명이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선배님도 그 모임에 합류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관심이 폭발했다. 내가 일찍이 졸업생으로서 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장학회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다음 해부터 나는 강릉중앙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인문계학교로 전환하려는 학교와 졸업생들의 기대가 클 것으로 희망하였다. 실업계고등학교가 가진 애로사항은 재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인문학 기초에 대한 학습시간 부족은 대학진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는 특성화고등학교 교육을 전면 개편하여 인문계로 전환하는 것이 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2년간 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부분은 현금 65백만 원을 출연하였고 추가로 나중에 임야 약 3000평을 내놓았다.

내가 장학회에 기부한 임야는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가 1978년 최초로 부동산 투기를 겪으면선 전국 땅값이 크게 올랐다. 강남에는 기획부동산이 생겨났다. 그 무렵인 1980년에 강남에 거주하는 교수 한 분이 공동투자를 제안했다. K대 동료교수 8명이 250만 원씩 출연하여 진도에 위치 좋은 곳 임야 약 3000평을 매입했다.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부동산 말만 듣고 계약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당시에 교수 월급이 300만 원이었다. 30년 동안 보유하다가 교수들이 모두 정년퇴임 하게 되자 기부하거나 처분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가격을 알 수 없었다. 회원들 간에 공시가격으로 팔기로 했다. 공시가격은 30년간 변화 없는 낮은 수준이었다. 8명 회원 중에 희망자가 없었다. 마지막 자리에 앉았던 내가 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남들이 사지 않는 임야를 왜 샀느냐는 아내의 질타를 들었다. 우리는 자녀도 잘 키웠으니 언젠가 기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아내의 분노가 풀렸다. 기부행위는 아내에게도 고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동창임원회 인사말에서 존경을 담은 표정과 우러러보는사람들의 시선에서 장학금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고등학교 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후배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력투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기부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 자가 아닐까.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수필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KakaoTalk_20250919_163921955.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댜한기자신문] 김봉구 교수의 열정 인생사, 수필 '우러러보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