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대한기자신문 이창호 기자 ]경주 도심 한가운데, 조용히 솟아오른 봉분들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신라 천년의 혼이 잠든 경주 대릉원이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평화로운 언덕 같지만, 그 아래에는 찬란한 왕국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대릉원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그것은 신라인의 미의식, 권력의 상징, 그리고 죽음을 초월한 삶의 철학을 품은 거대한 문화의 보고다.

경주의 중심지에 자리한 대릉원 일대는 신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밀집된 왕릉군으로, 약 1,500여 년 전 신라의 정치 중심지였던 월성(반월성)과 인접해 있다. 이는 당시 왕권이 도시의 중심에서 신성시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대릉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큰 능들이 모여 있는 정원’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실제로 내부에는 23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그중 천마총·황남대총·미추왕릉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천마총(天馬塚)은 1973년 발굴 당시 신라 고분의 구조와 부장품 양식을 밝혀낸 획기적인 사례였다.
출토된 천마도(天馬圖)는 신라인의 사후관(死後觀)을 엿볼 수 있는 상징물로, 죽음 이후에도 하늘을 달리는 영혼의 자유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속에서 신라인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승화’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단지 종교적 신앙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생명 순환의 철학으로까지 이어진다.
황남대총은 규모 면에서 동아시아 최대급의 고분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부부합장릉이다.
남분에서는 금관, 허리띠, 귀걸이 등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황금 장신구가, 북분에서는 여왕 혹은 왕비로 추정되는 인물의 유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는 신라 사회가 부부공동체적 정치문화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남녀의 조화를 통한 국가 경영, 그리고 신라 고유의 모계적 전통이 교차된 흔적이다.

또한 미추왕릉은 신라 제13대 왕인 미추왕(味鄒王)의 무덤으로 전해지며, 삼국유사에는 그가 죽은 후에도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백제의 침공 당시 대나무 잎을 휘날리며 미추왕의 군대가 나타나 적을 물리쳤다는 ‘죽은 왕의 수호’ 이야기는, 신라인들의 영혼 숭배와 왕권 신성화 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릉원의 무덤들은 모두 흙과 자갈을 교차로 쌓은 독특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형식을 띤다. 목관을 중앙에 두고, 그 위를 자갈과 흙으로 덮어 외부 침입을 막은 구조다.
이 공법은 신라인이 얼마나 철저히 사후 세계를 지키려 했는지, 또 인간 존재를 신성하게 여겼는지를 잘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가 단순한 기술적 수단을 넘어 죽음을 통한 영혼의 봉인(封印), 즉 인간과 신의 경계를 구분 짓는 상징체계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릉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경주 역사유적지구’의 핵심을 이루며, 신라 문명의 정신적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분의 봉분 사이를 걷다 보면, 바람이 능선을 타고 흘러 신라인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예술혼과 생명관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특히 최근 들어 대릉원은 단순한 역사 유적을 넘어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수목과 초지, 그리고 야간 경관 조명은 마치 시간의 터널을 걷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방문객들은 무덤을 ‘죽음의 흔적’이 아닌 ‘삶의 흔적’으로 바라보며, 천년 고도의 문화적 정체성을 체험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이자 정신의 계승이라 할 만하다.
경주 대릉원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의 삶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신라인이 금관과 천마도를 남겼듯, 오늘의 우리는 어떤 가치와 정신을 후대에 전할 것인가. 대릉원은 과거의 무덤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결국 대릉원의 역사적 의의는 ‘왕의 무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시간을 품은 철학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곳에는 권력의 찬란함과 인간의 유한함,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생명 존중의 사상이 교차한다. 천년이 지난 지금, 대릉원은 여전히 살아 있다쉰다.ß라인의 미소처럼 고요하지만 단단하게, 우리 곁에서 역사의 숨을 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