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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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이 무너질 때, 돈은 사라진다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경제의 역사는 숫자의 역사라기보다 신뢰의 역사다.

우리가 사용하는 돈, 거래하는 계약, 투자하는 주식까지 모두가 약속이라는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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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그러나 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눈앞의 자산은 한순간에 증발한다. 그것이 바로 신용 파괴의 원리다.

 

신용 창조가 보이지 않는 돈의 탄생을 의미한다면, 신용 파괴는 보이지 않는 돈의 증발을 뜻한다.

 

은행의 대출, 기업의 부채, 투자자의 기대가 모두 하나의 신뢰 사슬로 연결되어 있을 때, 경제는 매끄럽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슬의 한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불신은 순식간에 번진다. 신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너질 때는 폭포처럼 무섭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원리의 전형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 금융상품이 안전하다는 착각, 그리고 시스템이 통제될 것이라는 과신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 결과는 돈의 부족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였다.

 

투자자들이 서로를 믿지 않자 거래는 멈췄고, 자본의 흐름이 얼어붙었다.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돈으로 작동하던 신용이 기능을 잃은 것이었다.

 

오늘날 신용 파괴의 징후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ESG 보고서가 거짓으로 드러나거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감춰진 채 불거질 때, 시장은 냉정하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두 번 회복되지 않는다는 냉엄한 원칙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사람을 보고, 재무제표보다 행동을 본다. 그 순간 시장은 이미 판단을 내린다.

 

신용 파괴의 본질은 도덕의 균열이다.

 

회계 부정, 탐욕적 투기, 무책임한 정책 - 모두 신용의 바탕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문제다.

 

신용이란 결국 타인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무너지면, 경제는 그 위에 쌓인 모든 구조를 함께 잃는다.

 

신용은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온도의 문제다.

사회가 냉소로 식으면, 신용의 온도는 떨어지고, 돈의 흐름도 함께 식는다. 반대로 신뢰가 회복될 때, 경제는 다시 숨을 쉰다. 신용이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체온이다.

 

신용 파괴의 시대를 막는 길은 간단하다.

탐욕보다 절제를, 효율보다 신뢰를 우선하는 일이다. 금융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시장은 사람의 마음으로 움직인다.

 

돈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사라지는 것이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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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 신용 파괴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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