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를 매기는 인간의 본능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우리는 오랫동안 ‘돈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왔다.
“돈 이야기하는 건 천박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이유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 크다. 효와 예를 중시한 유교적 가치관은 도덕적 품성과 명예를 강조하며 물질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덕 있는 삶이 곧 바른 삶이었고, 돈을 좇는 것은 속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
지식이 자본이 되고,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시대에, 돈을 논하지 않는 것은 마치 삶의 절반을 외면하는 일과 다름없다.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돈을 무시하는 것이 고결함이 아니라, 때로는 무책임이 되기도 한다.
반면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돈을 ‘삶의 언어’로 배운다.
아이에게 용돈을 주며 단순히 쓰는 법이 아니라 ‘불리는 법’, ‘나누는 법’을 가르친다.
그들은 돈을 단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의 도구로 본다.
돈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인간의 신뢰와 계약, 나눔의 가치를 동시에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자가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모델이 된다.
그들에게 돈은 품격의 척도가 아니라, 책임의 증거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품고 있다.
한편으로는 돈을 멀리하는 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생의 최종 목표처럼 여긴다.
돈을 벌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평가하고, 너무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라 손가락질한다.
이 모순된 태도 속에서 우리는 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이제는 돈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돈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경제적 여유는 단지 물질의 풍요를 넘어, 생각의 자유·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이다.
돈이 인간을 지배할 때 그것은 탐욕이 되지만, 인간이 돈을 다스릴 때 그것은 지혜가 된다.
우리가 유대인에게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부의 기술이 아니라, 돈을 ‘가치의 표현’으로 대하는 태도다.
그들은 돈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공동체를 지탱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으로 남긴다.
이러한 철학이야말로 부의 대물림보다 더 큰 유산이다.
돈은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거울 속에 탐욕이 비치면 불행해지고, 감사가 비치면 풍요로워진다.
우리 사회가 이제야말로 배워야 할 것은 ‘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품격’이다.
돈을 부정하지 않고, 돈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경제적·정신적 성숙에 이를 수 있다.
‘돈의 개념’을 다시 묻는 일은 단순한 경제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로 세상을 보고, 어떤 철학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돈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바뀔 때, 비로소 삶의 균형도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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