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국가와 국가가 교류하는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이 ‘이해(理解)’의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은 단절되어 있다.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군가의 말 속에 숨은 사정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대신,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관계는 얇아지고, 신뢰는 약해진다.
나는 한중 교류의 현장에서 수없이 느꼈다. 언어와 문화, 가치관이 다른 두 나라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제협력의 성과보다 더 귀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에는 “군자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하여, 덕이 두터운 사람은 세상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국제 교류의 본질을 꿰뚫는다. 덕이란 곧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품격이며, 그것이야말로 신뢰의 토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기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내 경험이 보편적이라는 착각이 상대의 현실을 왜곡한다.
이해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인내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대의 말이 들리고 그의 사정이 보인다.
“왜 저럴까”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한중 양국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역사적 감정이나 정치적 입장에 매여 서로를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협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필자가 한중교류촉진위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학술·문화 교류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학문과 문화, 언어와 인문정신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쌓여야 국가 간 신뢰가 형성된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자주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지식보다 ‘공감의 깊이’를 먼저 길러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혜다.
그것이 있어야 한중 공동체는 지속 가능해지고, 국제 협력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내 옆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사와 직원, 그리고 이웃 간의 관계 속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사회의 신뢰를 세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
나는 늘 믿는다. 한중 양국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갈등도 극복할 수 있다.
이해는 협력의 씨앗이고, 신뢰는 평화의 열매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면,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한 개인의 관계든 국가 간 교류든,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중연합일보'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