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석 작가는 인천 출신.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석사. '월간 문학세계' 시 등단. 법무사. 검찰공무원 퇴직. 법원 집행관 외 다수. 동작문인협회. 문학세계문인회. 광화문시낭송회 회원. '월간 문학세계' 운영홍보위원.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회원, 시집 '풀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 좋다'. 공저 '상도문학 시인들.'
길에서 삶을 찾다
이규석/ 작가
나는 어디론가 떠나는 걸 좋아한다. 걸어서 갈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떠남이 있기에 걷는다고 말할 수 있다. 자차나 대증교통을 이용해서 멀리 가더라도 그것은 운반 수단에 불과할 때가 많다. 도착하면 멀리 오래 걷는 편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도 자주 즐겨 걷는다. 집이 한강변이라 틈나는 대로 반포나 용산, 더 멀리 마포나 중랑천 등지까지 강을 따라 걷는다. 강이 실증나면 동네 야트막한 산을 오른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 함께 한강을 제대로 걸어보기로 하고 염창동의 안양천 합류지에서부터 여의도, 잠실, 팔당을 거쳐 양평의 양수역까지 왕복으로 걸어간 적도 있다. 물론 두어 달 동안 구간을 나눠서 걸었다. 거리는 양쪽의 강변을 합해서 100km가 넘는다. 최근엔 ‘제주올레걷기축제’에 참가하여 2박 3일 동안 17, 18코스 40km 전 구간을 걷기도 했다.
내게 걷기는 여행을 겸한 산책이다. 산책이더라도 가급적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걷는 편이다. 도시에서는 번잡한 도로보다 이면길이나 골목길을 더 선호한다. 그곳은 소음도 적고 고즈넉하여 걷는 데 방해를 받지 않아서다. 도중에 재래시장이 있으면 일부러 둘러보는데, 시끌시끌한 흥정이나 호객 행위는 소음이 아닌 흘러간 노래처럼 정이 간다. 때로는 순례자가 되어 경건한 마음으로 걷기도 하고 흥이 나면 시를 끄적이거나, 여기저기 눈길을 주다 보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 '마상청앵도' 에서 선비가 말을 타고 버드나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한 쌍을 바라보는 장면에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한다.
숲이나 산에 가면 야생화나 풀꽃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키 큰 노거수의 굵고 투박한 표피를 쓰다듬으며 녹록지 않은 경륜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자연히 걸음은 더뎌지고 일행이 있으면 뒤처지거나 대화에 소홀해서 여간 미안하지가 않다. 느긋하게 걷는 내 성향으론 정신 건강은 몰라도 체력을 다지기엔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몸에 부딪히는 바람이 우주의 숨결같이 부드럽고 묵직하다. 바람을 밀고 나아가는 내 걸음과 날 밀어내는 바람과 적당히 밀당하면서 상쾌하게 걷는다.
중력에 순응하여 발은 땅을 굳게 딛고, 머리는 광활한 하늘을 이고 걸어가는 길에 숲속의 나무들과 새들의 지저귐, 사람들의 소곤대는 말소리는 푸근하다. 내 걸음의 속도는 적절한 힘으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와 같다. 결코 무리해서 걷지 않는다. 그곳에는 기다릴 누구도 없거니와 걸어가면서 보고 느끼면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걸을 때 챙겨야 할 것은 배낭보다 먼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볼 여유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그리고 인내심이다.
내가 걷는 방식은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가듯이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며 걷는 것이다. 고요 속에서의 움직임이랄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공간이 모두 고요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주변의 소음이 사라졌다고 가정해보라. 그 순간에는 적막만이 남지 않는가. 그 빈 공간으로의 여행은 얼마나 생생한 에너지를 불어넣는지 모른다.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나고 자연과 내가 일체가 된 느낌이 든다. 걷는다는 것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과의 합일, 이를테면 몰아(沒我)를 이루는 과정이랄 수 있다.
걷는 것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다비드 브르통은 <걷기 예찬>에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나는 호흡의 들숨과 날숨, 흐르는 땀, 심장과 경동맥의 박동,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다리 등을 통해 살아 있음을, 살아내고 있음을 느끼고 안도한다. 살아 있다는 자각, 그 자체가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 글을 걸어가면서 쓰고 있다. 즉시적이고 반사적으로 주변의 정취에 몰입하다 보면 내 안의 감정과 감성이 과장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일어난다. 그 순간 내가 대상 속에 있고, 대상이 내 안에 있어 서로 하나라는 자각이 들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걷기는 일종의 수행이며, 내 영혼을 진보시켜준다고 믿는다. 고요한 예배당이나 산사에 가서 기도와 좌선을 해야만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거리나 번잡한 곳에서도 가능하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수행 아닌 것이 없다. 나는 걸으면서 수행을 한다. 나에게 삶은 길 위의 수행인 것이다.
▼ 이규석
인천 출신.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석사. '월간 문학세계' 시 등단. 법무사. 검찰공무원 퇴직. 법원 집행관 외 다수. 동작문인협회. 문학세계문인회. 광화문시낭송회 회원. '월간 문학세계' 운영홍보위원.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회원, 시집 '풀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 좋다'. 공저 '상도문학 시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