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리더십은 조정과 설득이 아니라 대립과 배제로 작동했고, 국정은 통합의 언어 대신 적대의 언어를 반복했다. 책임지는 정치는 실종됐고, 그 공백을 오만과 독주가 채웠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더 이상 ‘혹시나’라는 기대를 품지 않게 됐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대표 칼럼니스트] 정치권에는 유독 오래된 낙관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민심은 잊고, 진정성 있게 호소하면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다.
이른바 ‘혹시나’라는 정치적 습관이다. 지금의 민심은 그런 기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만은 다르다. 국민의 판단은 차갑고, 계산은 끝났다.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는‘분노라기보다 단념’에 가깝다.
분노는 변화를 기대할 때 생기지만, 단념은 기대가 사라졌을 때 나타난다.
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민심은 바로 그 지점에 도달했다.
권력의 언어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고, 정치적 수사는 공허하다. 국민은 오직 결과와 책임으로만 정치를 평가한다.
민심 이반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민생이다. 물가는 오르고, 이자는 삶을 짓누른다. 청년은 기회를 잃고, 자영업자는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지난 시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여준 지난 국정 운영은 민생보다 정쟁에, 해법보다 진영 논리에 기울어 있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조정과 설득이 아니라 대립과 배제로 작동했고, 국정은 통합의 언어 대신 적대의 언어를 반복했다.
책임지는 정치는 실종됐고, 그 공백을 오만과 독주가 채웠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더 이상 ‘혹시나’라는 기대를 품지 않게 됐다.
출범 당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기치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은 정치적 구호에 그쳤다.
선택적 정의, 편파적 법 집행 논란, 반복된 인사 실패는 공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실수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였다. 사과 없는 버티기와 변명은 민심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
이제 문제는 보수 진영, 특히 국민의힘의 선택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여전히 머뭇거린다면, 그 자체로 민심과의 괴리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모호함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 회피로 읽힌다.
윤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보수의 자산이 아니다. 국정 실패의 기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떠받친 정치 세력 전체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를 분명히 정리하지 못한다면 국민의힘 역시 심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수 재건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적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으로 공식화해야 한다.
거리 두기나 형식적 선 긋기로는 부족하다.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책임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어떤 쇄신도 진정성을 얻기 어렵다.
정치는 기억의 싸움이다. 국민은 이미 윤석열 전 정부는 하나의 미결된 비서사로 정리하고 있다.
그 비서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윤석열과의 결별이후’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다.
인물 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교체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보수 정치가 지금 붙잡아야 할 태도는 기계적 동행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 부정이다.
실패한 정권과 결별할 용기가 없다면, 보수의 미래 역시 없다.
정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민심은 이미 다음 선택을 준비하고 있다.
‘혹시나’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순간, 보수의 시간은 멈춘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윤석열과 결별하고 국민 앞에 다시 설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권력에 발목 잡힌 채 퇴장할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