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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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다는 대나무를 먹지만, 그중 17% 내외만을 흡수할 뿐이다. 이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판다는 '다식(多食)'과 '절전(節電)'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중국 쓰촨성의 어느 울창한 죽림(竹林), 정적을 깨는 것은 서걱거리는 댓잎 소리와 무언가를 힘차게 씹어 삼키는 투박한 소리뿐이다.

 

둥글둥글한 몸집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듯한 눈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자이언트 판다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귀여운 외모 뒤에는 생물학계의 해묵은 난제이자, 자연이 써 내려간 기묘한 생존의 서사시가 숨겨져 있다.

 

본래 판다는 곰과()에 속하는 엄연한 육식동물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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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바이두(百度)

 

날카로운 송곳니와 짧은 소화기관은 그들이 한때 고기를 찢고 단백질을 섭취하던 포식자였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피 냄새 진동하는 사냥터를 뒤로하고, 영양가도 낮고 질긴 대나무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을 잃어버린 대신 '생존'을 택하다

 

과학자들은 약 420만 년 전, 판다의 유전자에 일어난 미세한 변화에 주목한다.

 

고기의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는 수용체 유전자인 'T1R1'이 기능을 멈춘 것이다.

 

고기 맛을 모르게 된 판다에게 숲속의 고기는 더 이상 매력적인 식사가 아니었다.

 

동시에 기후 변화는 판다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경쟁자들이 늘어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판다는 '블루오션'을 발견했다.

 

바로 사시사철 푸르고, 어디에나 널려 있으며, 다른 동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대나무'였다.

 

경쟁자가 없는 식탁을 차지하기 위해 판다는 자신의 식성을 송두리째 바꾸는 도박을 감행한 셈이다.

 

1%의 영양을 위한 14시간의 사투 문제는 대나무가 지독하게 영양가가 없다는 점이다.

 

대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는 육식동물의 장 구조를 가진 판다가 소화하기엔 너무나 견고한 성벽이다.

 

판다는 대나무를 먹지만, 그중 17% 내외만을 흡수할 뿐이다이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판다는 '다식(多食)''절전(節電)'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하루에 최대 12~38kg에 달하는 대나무를 무려 14시간 동안 끊임없이 먹어 치운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식사에 할애하는 것이다. ,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이동을 최소화하고 극도로 게으른 생활 방식을 유지한다.

 

판다의 느릿느릿한 몸짓은 귀여움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처절한 에너지 관리 시스템인 것이다.

 

진화의 '가짜 엄지'가 주는 교훈

판다의 앞발을 보면 진화의 신비는 절정에 달한다.

 

대나무 줄기를 단단히 쥐기 위해 판다는 원래의 다섯 손가락 외에 손목뼈가 돌출되어 만들어진 이른바 '여섯 번째 손가락(가짜 엄지)'을 가졌다.

 

이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언급했듯, 완벽한 설계가 아닌 '임기응변식 진화'의 상징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의 구조마저 뒤바꾼 생명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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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의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오늘날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모습은 우리에게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면서까지 적응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과도 닮아 있다.

 

비록 고기 맛을 잊고 평생 싱거운 대나무만 씹어야 하는 고독한 길일지라도, 판다는 그 선택을 통해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했다.

 

대나무 숲의 고독한 미식가가 보여주는 '적응의 미학',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임을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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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자신문=광장] 대나무 숲의 고독한 미식가, 자이언트 ‘판다’가 남긴 진화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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