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대표적 문화 수호자였다. 그가 1933년 일본 경매에서 낙찰받은 이 청나라 석사자상은, 1938년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 건립 이후 정문을 지키며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대한기자신문|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80여 년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입구를 묵묵히 지켜온 청나라 석사자상 한 쌍이 마침내 고국인 중국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의 이동이라는 표면적 사건을 넘어, 이번 귀환은 한중 양국이 문화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정표로 평가할 만하다.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로 체결된 국립중앙박물관과 중국 국가문물국 간의 기증 협약은 단순한 반환 합의가 아니다. 이는 문화재를 매개로 한 신뢰 외교의 복원, 그리고 동아시아 문화 협력 질서의 성숙을 알리는 사건이다.
■ 간송 전형필의 혜안, 소유를 넘어선 ‘문화적 도의(道義)’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대표적 문화 수호자였다.그가 1933년 일본 경매에서 낙찰받은 이 청나라 석사자상은, 1938년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 건립 이후 정문을 지키며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간송의 시선은 소유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이 사자상을 ‘잠시 맡아둔 문화적 손님’으로 인식했고, “중국의 소중한 유물인 만큼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개인적 미덕이 아니라, 문화재를 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선구적 관점이었다.
이 유지는 세대를 넘어 이어졌고, 2016년 수장고 신축 당시의 기증 시도가 이번 정상외교의 흐름과 맞물리며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이는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간송의 문화보국 정신이, 오늘날에는 국경을 초월한 문화 윤리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 황실의 품격, ‘택문 석사자상’의 학술적·상징적 가치
이번 기증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해당 유물의 예술사적 위상에 있다. 높이 1.9m, 무게 1.25t에 달하는 이 석사자상은 중국 전문가 그룹의 실사 결과, 제작 기법과 조형의 정교함으로 미루어 청나라 황족의 저택인 왕부(王府) 입구를 지키던 택문 석사자상으로 판명되었다.
이는 단순한 장식 조형물이 아니라, 당시 황실 문화와 권위, 미학이 집약된 상징물이다. 역사적·과학적 가치가 공인된 이 유물의 귀환은 중국 사회에서도 문화적 자긍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동시에 한국이 보여준 문화적 성숙도 역시 국제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 ‘자발적 기증’이 만든 한중 문화외교의 새 모델
이번 사자상 기증은 한중 관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민간 주도의 문화외교 모델이다. 간송미술관이라는 민간의 뜻을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국가 기관이 제도적으로 완성시킨 이번 사례는, 정치·외교적 긴장 국면에서도 작동 가능한 ‘민관 협력의 정석’을 보여준다.
둘째, 문화재 환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약탈과 강제 반환이라는 과거의 갈등 서사를 넘어, 자발적 기증과 상호 존중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 사례라는 점에서 동북아 문화재 교류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정상외교의 실질적 성과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임석한 가운데 체결된 이번 협약은, 선언적 합의를 넘어 양국 국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 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다.
■ 문화로 여는 공존의 길, 비어 있지 않은 ‘사자상의 자리’
간송미술관에서 사자상이 떠난 자리는 공백이 아니다. 그 자리는 이제 한중 양국이 함께 써 내려갈 상호 존중과 우정의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사례를 기점으로 박물관·미술관 간 공동 연구, 교류 전시, 학술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80년의 기다림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석사자상이, 앞으로는 한중 양국 관계를 굳건히 지키는 ‘평화의 파수꾼’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문화는 갈등을 넘어 신뢰로 가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