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학, 송곡대학교 객원교수】 문제의 원인이 구조에 있다면 해법 역시 구조여야 한다.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정책이 어떤 전환 설계를 통해 실행돼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정년을 늘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정년 찬반이 아니라, 왜 이 사회가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오는지에 대한 정책적 성찰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중장년은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불안하다고 말하고, 청년은 출발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직장 안에서는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직장 밖에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인건비 상승과 고금리, 수요 둔화라는 복합 압박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겉으로는 세대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불안정한 구조 안에 놓여 있는 상태다.
중장년에게 정년은 특권이 아니라 연금 이전의 소득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실제 은퇴 시점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고, 이 공백을 개인 저축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 축소의 신호로 읽힌다. 기업 역시 연공형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년 연장이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한쪽의 요구는 다른 쪽의 불안으로 번역되고, 세대 갈등은 공정의 언어를 빌려 증폭된다. 청년과 중장년이 동시에 패자가 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문제는 정년 논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 설계와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년만 조정하고 임금체계와 직무 구조를 그대로 두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조직은 경직된다. 그 결과 청년은 진입 기회를 잃고, 중장년은 불안정한 잔여 노동으로 밀려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선택을 강요했을 뿐, 전환의 경로를 제시하지 못했다. 갈등의 원인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결정을 미뤄온 정책 방식에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동정책의 핵심은 ‘더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동하고 전환하는가’에 있다. 정책의 초점은 정년 연장이 아니라 전환 설계로 옮겨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일정 연령 이후에는 숙련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멘토·품질관리·안전·교육·관리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무 재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숙련의 사회적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업이 이러한 전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도 필요하다. 청년 채용과 중장년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에 대해 사회보험료 감면이나 법인세 세액 공제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직무 전환 성과가 확인된 기업에는 공공조달이나 정부 사업 참여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내부의 자율적 조정을 촉진하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전환 비용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장년 전환교육과 재훈련 비용은 고용보험기금과 직업능력개발기금을 연계해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일정 기간 소득 감소를 완충할 수 있는 전환수당 제도 역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재정 지출이라기보다 기존 고용·훈련 재원의 재배치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에 가깝다. 청년 고용 확대와 중장년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실업·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방향보다 실행 순서에 달려 있다. 정년 논의가 먼저 나오고 임금·직무 개편이 뒤따르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환 설계와 재정 분담의 원칙을 먼저 제시할 때 비로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세대 갈등은 정책 선택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대 간 경쟁을 부추기는 논쟁이 아니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정책 결단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 이 글은 초고령사회 노동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짚는 연속 칼럼의 첫 번째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