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이 언급한 ‘온고지신’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21세기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던진 화두는 명확했다.
과거를 기억하되 미래를 향한 문을 닫지 않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 한·중·일 3국이 직면한 공통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상호주의 한중일 공동운명체’가 그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히 셔틀외교의 복원을 넘어, 동북아의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한국이 능동적인 가교 국가(Bridge-building State)로 서겠다는 전략적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 온고지신,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동력으로
이 대통령이 언급한 ‘온고지신’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21세기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되, 그것이 현재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실용주의적 결단이다.
실제로 이번 방문지인 나라현의 호류지(法隆寺)는 한반도 도래인의 기술이 녹아든 한일 교류의 상징적 장소다.
이 대통령은 이곳에서 양국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임을 강조하며, 갈등의 연대기를 넘어 공존의 연대기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는 과거사 문제를 ‘투 트랙’으로 관리하며, 실질적인 협력의 공간을 넓히려는 이재명 정부 특유의 ‘실용 외교’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 한·중·일 공통분모,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연대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넘어 ‘한·중·일 공통점’에 주목했다. 현재 동북아 3국은 저출생·고령화, 인구 감소, 지방 소멸,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유례없는 공동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초국가적 난제들이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미래상호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수소·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에서의 협력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공조다.
또 재난 안전과 보건 안보 협의체 출범은 3국 시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생 외교의 핵심이다.
‘한중일공동운명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는 준엄한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 가교 국가로서의 한국,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꿈꾸며
‘대한기자신문’의 시선으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이 진정한 성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미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조세이 탄광 유해 수습 등 구체적인 과거사 현안에서 진전된 일본의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부의 숙제다.
둘째, 한·일 협력이 한·미·일 군사 블록화로만 매몰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공언한 만큼, 일본과의 밀착이 대중 관계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서로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북아가 갈등의 화약고가 아닌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에 기반한 ‘호혜적 이익’이 담보되어야 한다.
‘미래상호주의’가 말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 모델을 조속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온고지신의 지혜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데 있다. 한일 관계의 해묵은 과제를 지혜롭게 관리하며 동북아 공동운명체의 초석을 놓는 것, 이것이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거대한 외교적 시험대다.







